스위스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일컬어 '국민의 양심'이라고 말한다. 영국에서는 하원의원의 약자인 MP(Member of Parliament)가 명함이나 저서에 표기돼 있으면 그 신뢰도가 절대적이다. 의사당에 출근하는 의원의 통행로를 무조건 먼저 열어주는 나라가 영국이다. 나라일을 보는 의원의 길은 아무도 못막는다는 불문율 때문이다. 의사당 앞 교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는 의원이라면 시골에서 막 상경한 초선 의원이 틀림없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다.
우리국민도 이런 국회의원을 가져보는 게 소망이다. 소망을 이루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신뢰할 수 있는 대표를 선출해 국회에 보내면 된다. 문제는 이 일이 말 만큼 쉽지않다는 점이다. 쉽지 않은 이유는 신뢰할 수 없는 정당 때문이다. 신선한 인재를 국회에 보내봐도 정당이라는 쓰레기통에 장미를 심은 결과로 나타나니 국민 입장에서는 기가 찰 일이다. 더 이상 쓰레기통에 이식되기를 거부하고 불출마를 선언한 인사들은 국민의 절망을 단적으로 상징한다.
정말 다행인 것은 우리가 긴 터널의 끄트머리에 서있다는 점이다. 정치권은 지난 1년간 국민이 국가권력의 원천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뼈에 사무칠 정도로 깨달았다. '리무진'과 '티코'의 이전투구를 지켜보며 국민의 정치혐오는 극에 도달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 대통령으로선 유례없이 저조한 지지도를 기록한 것이나 여야 정당의 지지도를 모두 합해도 40%에 못미쳤던 것이 몇달 전의 일이다. 그러나 국민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대통령과 국회 두 권력기관에 상생의 정치를 제안했다. 대통령은 사과하고 야당은 탄핵을 시도하지 말라는 여론을 통해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슬기를 발휘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도 야당도 이를 거부했고, 상대적으로 야당이 거부의 대가를 더욱 잔인하게 치르는 중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국민에 의해 파산을 선고당한 정치권 전체가 신용불량 상태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참에 구제되지 못하면 아예 소멸되는 정당도 나올 것이고 민주노동당과 같이 이념과 정책이 선명한 정당이 국회안에 둥지를 틀게 될 것이다. 정당사에 유례없는 지각변동이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총선이 대의민주주의를 실현할 새판을 짜는 역사(役事)의 시작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이유도, 그만큼 유권자의 자발적 참여가 절실한 이유도 모두 예상치 못한 정치환경의 격변 때문이다.
시대의 사정이 이렇다면 한표를 행사할 국민들도 이에 상응하는 선택양식을 가져야 하는게 이치에 맞다. 우선 각 정당이 보여주는 상생과 공존의 의지를 면밀하게 주시할 필요가 있다. 선거운동 기간중에 쏟아내는 각당 지도부의 발언이 지니는 행간의 의미를 주의깊게 관찰해 여전히 구태의 유혹에서 허우적 대는 정당을 가려내야 한다. 예를 들어 지역주의를 부추기거나 세대간의 갈등을 조장하는 행보라면 철저히 배격하고 응징해야 한다. 정당투표가 병행되는 만큼 정당의 도덕적 행태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가 가능한 것이다.
이와함께 유권자 각자가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 이해, 사회통합에 대한 인식에 따라 정당과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각종 매체와 TV영상이 지배하는 '미디어크라시'나 '텔레폴리틱스' 현상은 유권자의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한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의사당 통곡,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눈물, 민주당 추미애 선대위원장의 삼보일배를 지켜보노라면 저절로 솟구치는 감정을 억누르기 힘든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감상적 단편이 선택의 기준이 돼선 안된다. 선택은 유권자가 자신의 의사를 어느 정당을 통해 대의(代議)시킬 것인지, 자문자답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
4·15 총선을 통해 국민들이 스스로 국가 권력의 원천임을 증명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소망한 정치인을 만날 수 있고 그런 정치인들이 상생과 공존의 장을 열어가는 정치를 볼 날이 올 것이다. /尹寅壽(논설위원)
상생의 한마당 열려면···
입력 2004-04-07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4-04-07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