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건 ‘용이 잠긴 시내(龍川)’…더 이상 그런 평화로운 땅이 아니다. ‘우리는 행복합니다’라는 절규의 표지판이 곳곳에 걸려 있는 지상낙원 그런 비슷한 곳은 더더욱 아니다. 어제오늘의 북녘 용천 땅 저기가 바로 2004년 4월 현재의 아비규환 지옥 1번지 주변이자 연옥(煉獄)의 실황 그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수백 명의 염마졸(閻魔卒), 두억시니―야차(夜叉) 떼를 지옥으로부터 외출 나오도록 용천 땅에 초대했길래 저토록 지독한 파괴의 심술과 해코지, 행패를 부리며 휩쓸고 지나간 것인가. 헐벗고 굶주린 차가운 땅이 온통 초토의 폐허가 돼버리고 그 뜨거운 초열(焦熱)지옥에서 살아 나온 처참한 몰골들이야말로 그냥 하기 쉬운 말로 목불인견이 아닐 수 없다.
 
이목구비의 형체조차 엉망일 정도로 심한 화상을 입은 채 형편없는 시설의 병원 같지도 않은 곳에 줄줄이 누워 있는 저 어린 천사들에겐 진통제 하나 없고 머리 위엔 그 흔한 링거 병 하나 매달려 있지 않다. 수술을 하려 해도 마취약이 없어 마취를 못하고 수술대도 조명등도 없어 푸줏간 평상 같은 곳에 눕힌 채 손전등을 비춰야 하는데다가 링거주사도 플라스틱 봉지 대신 사이다 병을 매달아야 한다. 저들에겐 무엇보다도 치료약이 화급(火急)하고 의료진과 치료 시설이 다급하다. 저 다급한 상황의 해소를 위해선 우선 가까운 남한 땅과 중국으로부터의 신속한 수송, 조달이 절실하다.
 
사태가 그런데도 남측의 의약품과 구호물자의 육로 전달을 거절하고 의료진 파견조차 사양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을 정도를 넘어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첫 구호 물품이 29일쯤 해양 수송로로 전달될 예정이라고 하지 않는가. 북측이 해양 우회로를 고집하는 까닭은 도대체 무엇인가. 육상으로 떠벌리고 ‘올라오는’ 동족의 원조 물자 트럭들이 창피하기 때문인가, 보다 많은 육상 ‘인민’들의 눈에 띄는 것이 체제상의 자존심에 저촉되기 때문인가. 아니면 군사상 이유 그런 것인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용천 사고만은 의외로 사고 이틀 뒤에 서둘러 공식 발표했고 “피해가 대단히 크다”는 추상적 표현과 함께 이례적으로 남한은 물론 유엔 등 국제사회에 도움도 요청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중국의 단둥(丹東) 통로와 러시아의 항공로 등 전세계의 구호품이 답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사실조차 아직도 많은 북한 인민들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윤구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23일 평양에서 출국할 때까지 평양 시민들은 용천역 사고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이총재도 22일 밤 호텔에서 BBC 뉴스를 듣고서야 이튿날 북한 적십자 관계자에게 진상을 물었지만 모두가 대답을 회피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가슴을 트고 나라의 문도 열어 젖힐 차례다. 빤한 지구 별 세계를 함께 어울려 호흡하는 것이다. 나 홀로 국가, 독불장군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국가 체제가 아무리 중요해도 인민의 고통보다 우선일 수는 없고 인민의 기아선상을 간과할 수는 절대로 없는 게 아닌가. 절망과 불가능의 동토(凍土)로부터 벗어나는 길이 어서 열려야 한다. 희망과 가능성의 미래가 한시바삐 뚫려야 할 것이다. “공산주의란 완전한 잠꼬대야. 그 놈의 저주받을 책을 쓴 거야” 이렇게 웅얼거린 사람은 다름 아닌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마르크스였다. 그는 장장 18년간 집필한 공산주의 이론서 ‘자본론(Das Kapital)’을 출판사에 넘긴 뒤 엥겔스와 술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다지 않던가. 그들이 1848년 2월 24일 런던에서 발표한 ‘공산당 선언’ 첫머리도 ‘한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로 시작한다. 저들에게 유령이면 어떻고 도깨비면 어떠랴. 인민만 잘살게 해 준다면야….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