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 독일 총리가 따귀를 맞았다. 사민당이 엊그제 주최한 집회에 참석, 신입 당원들 앞에서 사인을 해 주고 있을 때 갑자기 등뒤에서 다가온 52세의 실업자로부터 호되게 얻어맞은 것이다. 범인은 경찰 조사에서 “끝없는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에 대한 응징”이라고 했고 슈뢰더는 기자들에게 “턱이 얼얼했다”고 따귀의 강도(强度)를 실토했다. 영국 총리 블레어도 그 이튿날 의회에서 대정부 질문 답변 중 방청석으로부터 자줏빛 분말로 채워진 콘돔 세례를 받았다. 그 역시 ‘미스터 콘돔’의 접근을 허용했더라면 한쪽 뺨이 벌겋도록 따귀를 맞았을지도 모른다.

부시 정권의 부도덕성을 통렬히 비난한 반전(反戰) 다큐멘터리 ‘화씨 911’로 칸 영화제의 대상인 황금종려상을 탄 마이클 무어 감독 일행이 부시를 만난다 해도 부시의 뺨은 온전치 못할지도 모른다. 하긴 그랑프리의 기쁨 끝이라 따귀까지는 몰라도 이렇게 다그칠 게 뻔하다. “봤지? 들었지? 이런 게 영화라는 것이고 예술로 꿰매고 포장한 진실이라고 하는 아주 희귀한 것이야! 당장 배급을 허용하고 백악관 마당에서 시사회나 갖자구!” ‘워싱턴포스트’는 ‘화씨 911’의 수상을 “백악관을 겨냥한 정치적 수류탄이나 다름없다”고 했고 ‘뉴욕타임스’도 약속이나 한 듯이 “무어 감독이 그 곳에서 폭탄을 터뜨렸다”고 논평했다. 그 ‘화씨 911’ 수류탄과 폭탄은 이제 전세계의 흥행 블록버스터로 터져 나갈 것이다.

일본 쪽의 고이즈미(小泉)는 어떤가. 적어도 그가 따귀 맞을 확률은 낮아 보인다. 그는 2002년 9월에 이어 두 번째 북한을 방문했다. 그 첫 번째 북·일 정상회담은 세계 정상회담사상 유례가 없는 굳은 표정의 ‘화난 악수’로 시작해 그렇게 마쳤다. 그만큼 북한은 그를 냉대했고 이번 회담 역시 엷은 미소만 거래했을 뿐 냉랭한 분위기는 달라지지 않았다. 공항 마중도 차관급을 내보내 홀대했다. 그런데도 그는 간과 쓸개를 생략한 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것이다. 명목이야 국교정상화지만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이 전부나 다름없는 방북이었다. 어쨌든 5명의 납치 가족을 동행, 귀국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에 대한 일본열도의 박수는 뜨거웠고 그의 정권에 대한 신임도도 10%나 뛰어올랐다. 그런데도 납치자 가족들은 8명 중 5명만 데려왔고 나머지 10명의 소식도 모른다며 불만을 터뜨렸고 ‘최악의 결과’라는 혹평까지 서슴지 않았다. 납북자 문제에 대한 고이즈미 정권과 국민의 관심은 열광에 가까웠다. 6자 회담도 핵 문제보다는 납치가 우선이었고 일본 TV엔 하스이케(蓮池), 소가(曾我) 등 납치자 가족의 얼굴이 비치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만큼 그들은 유명인사가 돼버렸다.

그런데 이 땅의 국가 원수들은 어떤가. “최근의 대통령 3명이 나라를 망쳤다”며 목을 매 저승으로 떠나간 전 육사 교장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도무지 열나게 손뼉 한 번 쳐줄 만한 일이 없지 않은가. 딱 한 가지 납북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일본인 납북자는 끽해야 몇십 명도 안 되는데 우리의 납북자는 미귀환자가 486명, 북한에 생존한 국군 포로만도 500여명이라고 통일부가 24일 밝혔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납북자 문제를 해결해 달라며 창자가 끊어질 듯 수도 없는 간청을 되풀이해도 마냥 메아리 없는 절벽일 뿐이 아닌가. 그래서 납북자가족협회가 이번 방북 길의 고이즈미에게 우리 납북자 문제까지 좀 껴잡아 풀어 달라는 소청의 편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문제의 편지를 받았는지 어찌했는지는 몰라도 그야말로 빡빡 씻어내고 싶은 한국인의 귀가 아닌가. 정부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함량미달의 정부라지만 모자라는 함량을 꾸어다가라도 백성들의 고통을 돌봐야 할 게 아닌가. /오동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