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언행이 또다시 장안의 화제, 정치권의 논쟁이 되고 있다. 대통령직 복귀 직후 노 대통령은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약속했다. 탄핵 이전의 힘 없는 대통령과 덩치 큰 야당간의 끝없는 언어 전쟁에 식상한 국민들이 통합과 상생을 원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에게 '힘'이 생겼기 때문에 대통령의 통치스타일에도 한결 여유가 깃들 것이란 기대가 컸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대통령의 통치언어는 여전히 피아(彼我) 구분형이니 답답하다. 지난번 연세대 특강의 발언은 잘못됐을 뿐 아니라 쓸데없기도 했다. 청와대가 정리한 발언록을 다시 음미해 보자. “진보, 보수가 뭐냐. 보수는 힘이 센 사람이 좀 마음대로 하자, 경쟁에서 이긴 사람에게 거의 모든 보상을 주자, 적자생존을 철저히 적용하자, 약육강식이 우주 섭리 아니냐, 그렇게 말하는 쪽에 가깝다. 진보는 더불어 살자, 인간은 어차피 사회를 이루어 살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냐, 더불어 살자다.(중략) 이렇게 이해하면 간단하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놓아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노 대통령의 정의가 옳다고 치자. 그 누가 보수를 자처하며 이 사회에 존재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라면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동물세계의 법칙을 신념으로 삼을 수 없는 것 아닌가. 사람이라면 대통령이 정의한 진보의 이념을 갖추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우습다. 대통령은 진보를 '더불어 사는 것'으로 정의했지만, 이는 진보의 개념이라기 보다 민주국가를 떠받치는 사회적, 시민적 덕목이라고 해야 옳다. 보수든 진보든 더불어 살자는 정치이념이고 삶의 가치이다. 다른 것은 이념과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과 방식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니 보수, 진보에 대한 대통령의 정의는 분명히 오류인 셈이다.
대통령의 발언으로 많은 국민이, 스스로 보수를 자처하는 많은 국민이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인 인간은 먹고 입고 잠잘데만 있다고 살아지질 않는다. 의·식·주 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조건은 각자가 지향하는 삶의 가치와 태도이다. 삶의 가치를 갖지 않거나 태도를 익히지 않으면 고립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정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래서 웬만한 개인차를 양보하고 보다 큰 가치나 신념으로 뭉친 집단들이 경쟁하면서 그 사회를 진전시킨다. '보수'와 '진보'라는 개념도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유력하고도 가치있는 신념이다. 이는 국민 각자가 생애의 상당기간을 통해 형성한 소중한 신념으로 함부로 폄훼해선 안될 불가침의 영역이기도 하다. 서로 영역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사회의 안정성이 깨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통령이 앞장서 보수의 정체성을 폄훼했으니 얼마나 쓸데없고 무모한 일인가.
웃지못할 일도 이어졌다. 노회찬 민노당 사무총장은 “대통령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이지 진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고 대통령의 공부 부족을 지적했다. 대통령이 진짜 진보세력의 선두에 서있다면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말이 없다.
지금 이 땅의 보수세력은 위축돼 있다. 노 대통령의 집권중이고 열린우리당이 국회 과반의석을 점유했기 때문이 아니다. 보수의 가치와 이념을 대변할 정당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보수를 자처하지만 원죄가 너무 커 진보진영에 떳떳이 맞서질 못하니 답답하다. 각종 TV토론에서 논쟁을 잘 이끌다가도 과거의 치부를 들이대면 고개를 떨구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볼 때 마다 이 땅의 보수세력들은 절망한다. 배설구가 막힌 공룡 꼴이다. 그러나 사정이 이렇다고 보수가 집단적으로 폄훼돼선 안된다. 보수세력은 여전히 나라를 떠받치는 실체로 존재한다. 조롱당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국가를 대표하는 대통령이 함부로 정체성을 훼손할 대상이 아니다. 보수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이 말한 그대로라면 상생은 힘들다./尹寅壽〈논설위원〉
保守를 조롱하며 相生 외치나
입력 2004-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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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0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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