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이를 닦고 밥을 먹었다. 학교에 갔다. 애들과 점심을 먹었다. 참 맛있었다'―이렇게 일기를 썼다간 아무리 초등학교 1학년 짜리라고 해도 담임 선생님의 꿀밤을 맞기 십상이다. 밥 먹고 배설하고 잠자는 일, 자고 나면 으레 하는 일을 일기라고 쓴다면 마당가의 멍첨지(개)가 다 웃을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고도 희한한 일이 이 나라에선 거의 매일같이 벌어져온 지 오래다. 청와대 오찬과 만찬이 그것이다. 오늘 오찬엔 아무개와 아무개, 만찬엔 무슨 단체, 어느 집단을 초대했다는 게 매일처럼 일기로 적히는 청와대 일지(日誌), 청와대 일기가 아닌가.
물론 점심, 저녁도 제목과 내용이 중요하다. 더구나 고급 와인으로 축배까지 치켜들며 격식 갖춰 잘 차려 먹는 청와대 오찬, 만찬인데다가 뭐 좀 알맹이 있는 테마의 토론을 끄집어 내가며 가타부타 구색 갖춰 우국충정이라도 토로(吐露)한다면야 값어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거의가 그렇지 못하다. YS가 1995년 8월 23일 각계 원로를 초대했다. 그러나 “칼국수 참 맛있습니다” “문민정부가 아니면 중앙박물관 철거는 어렵습니다” 따위 얘기가 고작이었다. 그런데도 그날 '점심'이 신문 1면 머리와 TV 뉴스 헤드라인으로 올랐다. 1단 감도 안되는 내용을 그렇게 보도한 뉴스 매체의 자질 또한 가히 미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그 날 DJ는 “별 대화는 없었지만 표정은 밝았다”고 했다. 그럼 그 자리에 누가 감히 벌레 씹는 얼굴을 하고 앉아 있겠는가. 또 후루룩 후루룩 집단적인 화음을 맞춰가며 “칼국수가 맛있다”고 찬탄하는 그런 모임이라면 설혹 주머니에 송곳 같은 의견이 있어도 용기있게 꺼내기는 어렵고 언중유골(言中有骨)도 퉁겨지기 어렵다. 상식적이다 못해 진부하기까지 한 대화에 걸맞게 그저 적당한 표정 관리로 웃어주고 장적(場的) 동작에 신경 좀 써 주면 그만인 것이다.
'무엇을 먹고 있는가보다는 누구와 식사를 하고 있는가를 봐야 한다'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가 아니더라도 누구와 식사를 하느냐가 그리도 중요한 것인가. YS의 칼국수와 DJ의 설렁탕 오찬은 유별났고 거기 초대받지 못하면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듯 여겼다. 그래서 더러는 중요한 선약도 깨뜨리고 황망히 달려가 오찬, 만찬에 참가함으로써 일생의 대사(大事)로 획을 긋고 그 크나큰 사건을 표구라도 해 안방에 걸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노 대통령의 청와대 오찬, 만찬도 거의 매일 같다. 한데 그전과는 달리 간혹 거절하는 인사가 있다는 소리도 들리고 서슴없이 반론을 제기하는 반골(反骨)도 있다고 들었다. 그러나 이른바 '면절정쟁(面折廷爭)'의 용기를 끄집어내는 이가 있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임금의 허물을 기탄 없이 아뢰는 게 면절정쟁이다. 칼날 같은 직간(直諫)을 아뢰는 것이다. 그런 직간을 기대하려면 청와대가 아닌 밖으로 초대해 소주잔부터 기울이는 게 지름길일지 모른다. 그래야 “이 봐! 그건 잘못이야…” 따위 술 취한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저렇게 매일같이 불러다 먹이는 잔칫돈도 수월치 않을 텐데…” 등 비난의 소리도 면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세계 어느 TV를 들여다봐도 보기 민망하고 거북한 청와대 오찬, 만찬 장면의 유례는 찾기 어렵다. 저 동네 저 사람은 도대체 얼마나 한가하길래 만날 사람들 불러 잔치나 즐기는가 하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청와대 일기'에서 그런 오찬, 만찬 스케줄은 삭제해야 할 것이다. 원래 임금이 국사에 바쁘면 식사 때도 잊는다고 했다. 그걸 일간망찬(日●忘餐)이라고 한다. 또 날이 새기도 전에 일어나 입는 임금의 옷을 소의(宵衣)라고 했다. /吳東煥(논설위원)
오찬 정치, 만찬 政治
입력 2004-06-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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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3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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