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들이 지금 나라를 걱정한다. 걱정의 요체는 방향감의 상실이다. 우리 사회가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인지, 그리고 리더는 누구인지 모르는데서 오는 혼란이다. 나침반을 상실한 집단의 위기감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입 가진 사람 모두가 손가락을 들어 가야 할 방향을 놓고 격론을 벌이는 형국이다. 나아갈 방향을 찾기 위한 잠시의 정적이 절실한 순간에 입 가진 사람 모두가 떠들어 대는 엄청난 소음. 바로 이 소음이 발등에 떨어진 우리의 위기다.
 
지금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김선일의 비극'도 그렇다. 우리는 진상규명의 여유도 없이, 그의 죽음에 이라크 추가파병 문제 부터 국립묘지 안장문제에 이르기 까지 너무 많은 것을 결부시키고 있다. 이라크 추가파병을 놓고 정부·여당과 시민단체·민주노총이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 대통령과 여당내 소장파의 의견이 엇갈린다. 국립묘지 안장문제도 그렇다. 국방부는 난색을 표하지만 여당의 당의장은 긍정적인 검토 의사를 밝혔고, 이에 질세라 한나라당의 원내대표도 동의를 표시했다. 이들에겐 김선일의 비극이 그저 정치일 뿐이고, 비극이 빨리 잊혀지기를 바라는 집단과 두고두고 지속시키려는 집단사이의 이해충돌이 있을 뿐이다. 웃기는 건 그들 중 '김선일 비극'의 진실을 얘기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저 정치적 프로파간다만 양산할 뿐이다. 진실은 알지 못한 채 주장만 난무하는 우리 내부의 모습은 정말 비극적이다.
 
김씨 피살 이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락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말을 많이 한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대통령은 국익 실현을 위해 이라크 추가파병의 당위성을 강조하지만, 국민은 미국에 대해 유난히 주체성을 강조했던 후보 시절의 대통령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반미면 어떠냐'는 발언에 열광해 표를 던진 사람들이 현 정부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당·정의 완벽한 분리를 기회있을 때 마다 강조한 대통령이지만 여당 관리용 개각에 골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취임 이후 검찰과의 한판, 재신임 파문, 탄핵 정국에 이르기 까지 대통령과 여당의 실세들은 근사한 레토릭을 무수히 쏟아냈다.
 
문제는 너무 많이 말을 하다보니 말에 힘이 실리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지금 대통령은 국익 실현을 책임지는 막중한 권위를 상실했다. 민주노동당 의원이 '공부좀 하라'고 비아냥대고 한 대학교수가 '무식해서 용감할 수 있었던 사람'이라고 공개적으로 쏘아붙일 정도가 됐다. 모두 대통령의 정체성에 대한 의혹제기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참여정부라는 말도 그렇다. 현 정부 집권 후 지금까지 국민이 국정에 참여한 것은 탄핵반대 여론으로 그의 탄핵을 무산시킨 일 정도다. 이라크 파병과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서 보듯이 국익과 국가의 장래가 걸린 문제에 국민이 진지하게 참여한 기억이 없다. 국가 중대사를 하나 같이 정략적 설전 속에 파묻어 하수구로 흘려버린 꼴이다. 그러니 이를 다시 세탁해 보자는 목소리가 사회 각계 각층에서 분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한번 세운 원칙이 흔들리는 혼란을 겪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치와 이해를 달리하는 집단의 소음은 여론으로 표출된다. 그런데 여론이 가치를 지니려면 사회 구성원들이 다양한 가치는 물론 심지어 모순되는 가치 까지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 가치의 공유를 유도하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이다. 단지 목소리 큰 사람이나 집단의 이해가 얽힌 주장이나 비현실적 선동은 여론이 아니라 소음일 뿐이다. 이성적인 여론이 아닌 즉흥적 소음이 지배하는 사회가 위기에 처하는 것은 자명하다. 우리 사회가 위기에서 탈출하려면 모국어의 소통을 방해하는 과잉소음 상태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