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의 불행한 참사가 1라운드를 끝내고 2라운드로 접어들었다. 1라운드는 머나먼 이국땅에 학비를 벌어보겠다고 떠났던 우리의 너무도 평범하고 가난한 이웃이 참혹한 주검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김씨에겐 이라크라는 곳이 약간의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지 결코 명분도 없이 목숨을 걸고 죽어갈 곳은 아니었을 게다. 그러나 그는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대한민국 공동체의 대표자가 되어 무장테러범의 목표가 됐고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지적해야 할 것은 김씨는 정치적으로 아무런 영향이나 힘이 없는 소시민으로서 우리 사회의 일원일 뿐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라크 무장단체의 빗나간 행위는 당초부터 목적 달성이 불가능한 막연한 테러에 불과했다. 더욱이 항거 불능한 개인을 참수한 테러집단의 반인류적 행동에 강한 분노를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는 세계도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특히 무고한 일반인을 향한 무차별적 모든 테러를 그 이유와 명분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격분하며 증오한다. 최근 이라크 전쟁의 도화선이 된 국제무역센터의 공격과 처참한 붕괴는 왜 테러와의 전쟁을 치러야만 하는지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선상에서 빚어진 이라크 전쟁은 대의명분을 상실한채 정당성이 표류, 또다른 테러에 얼룩져 갈수록 참담한 결과를 만들고 있다.
세계 각국의 여론은 이라크 전쟁의 당위성을 의심하는 추세로 돌아섰으며 각국 정부는 첨예한 정보망에 촉각을 세우며 자국민 보호를 위한 예방책에 골몰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일어난 이번 이라크에서의 민간인 김씨 피살은 우리에겐 가장 우려했던 최악의 한사례가 되고 말았다. 이사건이 국내에 알려지면서 한순간 온국민은 무기력에 빠져들어 경악과 함께 정부의 대처능력을 의심하며 끓어오르는 분노로 떨어야 했다. 수도없이 지적돼 온 위기대처 능력이 또다시 도마에 오른 것이다. 거기에다 이번에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국제적 망신까지 초래했다. 사건 초동 단계에서 특정 개인의 말만을 믿고 시시각각 우왕좌왕하더니 급기야 장관까지 나선 AP와의 공방이 아주 우스운 모양으로 종결됐다.
그동안 보도상 드러난 사실과 앞뒤 전후의 사정을 유추해 보면 김씨는 억류 20여일간 테러범들을 설득해 보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흔적이 역력하다. 피말리는 피랍 하루하루를 보내며 당시로서는 김씨가 할 수 있는 상황이 그들의 조그만 관용에 매달리며 혼신을 다하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역만리에서 목청을 높여 '대통령님 당신은 실수하는 거예요' '당신의 목숨이 중한것 처럼 내목숨도 중하다'며 제발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대목은 잔영으로 남아 두고두고 우리의 양심을 괴롭힐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대통령을 비롯한 외교부 장관이나 여야 지도부는 '파병철회는 있을수 없으며 테러집단에 물러설 수 없다'는 강력한 발언을 연달아 내놓고 심지어 이미 사태종결을 오판한채 확인 안된 허위보고와 보도가 잇달아 터져 나와 정부가 마치 무언가를 숨긴채 파병소신만 강조하는 듯이 보였다. 반추해 보면 참으로 허구에 의한 허풍과 오만의 부실덩어리 자세가 아니었나 싶다.
김씨의 시신은 돌아와 국민의 애통속에 영면에 들었다. 그러나 사태가 종결된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됐는지를 차분히 따져야 한다. 이것이 제2라운드이다. 우리 정부가 이사태를 전후해 모든 과정에 어떻게 처신했는지를 정확하게 밝히는 절차가 남아 있다. 이는 시시비비에 앞서 무엇보다 국민 보호가 우선인 정부기능에 대한 불신의 찌꺼기를 제거하기 위함이다. 정부는 관료들의 무능한 소신을 비판하는 목소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 것이 아니라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고 또 고쳐야 하는지를 정확히 짚어내는 능동적 자세를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윤인철〈논설위원〉
무능한 소신
입력 2004-07-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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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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