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부터 10년간 중국대륙을 암흑천지로 만들었던 문화대혁명은 마오쩌둥(毛澤東)이 실용주의 노선의 정적을 숙청하기 위해 기획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에 만취한 홍위병들이, 노선투쟁의 제물로 지목된 지식인과 지도층에게 가한 맹목적 학대극이었다. 중국의 석학 계선림은 자신이 겪은 문혁 체험기록 '우붕잡억(牛棚雜憶)'에서 당시의 광기를 '미혼탕을 마신 비인(非人)들이 우귀사신(牛鬼蛇神)을 학대한 10년 재앙'으로 정리했다.
문혁 시절 혁명파는 마음대로 자본주의파와 반동권위를 지목했다. 재판도 없었고 자기변호도 허용되지 않았다. 다만 타도대상을 인민 앞에 무릎 꿇리는 것으로 족했다. 중세를 암흑에 몰아넣은 종교재판도 피고에게 유리한 변호는 일절 허용하지 않았지만 불리한 증언만은 귀담아 들었다. 재판의 모양새는 갖췄던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중국의 문혁이 자본주의파와 반동권위를 선별하는데는 '지목'과 '인민의 고함'만으로 족했다. 계선림은 '우붕잡억'에서 모자를 얘기한다. “당시에는 온갖 모자가 세상에 가득 찼으며 크기도 아주 다양했다. 나에게는 자본주의파, 반동학술권위 이렇게 두 모자가 크지도 작지도 않고 아주 적당할 것 같았다.” 중국 지식인과 지도층은 혁명파들이 학대자를 구별하기 위해 만들어 준 '정치 모자'를 쓴채 소귀신 뱀귀신이 되어 외양간, 우붕에 갇혔던 것이다. 실용주의 노선으로 성장가도를 질주 중인 지금, 중국에선 '문화대혁명'이란 단어는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해 있다.
그런데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진절머리 치는 사상·이념·정체성 투쟁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한창이다. 그것도 정권을 주고 받으며 국가를 이어가야 할 여야 정당이 서로에게 피아를 구분하는 정치 모자를 씌우는 적대적 이념논쟁과 정체성 논란을 벌이고 있으니 보통 큰 일이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적대적 정치 모자를 씌우는 가해자로 규정하고, 자신들은 조작된 피해자들로 응전(應戰)할 뿐이라며, 싸움판을 키워가고 있으니 더욱 비극적이다. 한나라당은 집권세력이 자신들의 머리에 '극우' '친일' '반공' '유신' '반민주'의 모자를 씌우려 한다고 의심중이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한나라당과 보수언론이 '좌파' '친북' '반자유' '반자본' '반미'의 모자를 씌우려 기를 쓰는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자신들의 의도는 그게 아닌데 상대의 의도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 정체를 밝히라며 죽일듯이 노려보고 있다.
이들로 인해 국민은 불안하다. 불안한 이유는 자명하다. 이들이 자유와 민주, 두 가치를 양분해 벌이는 권력투쟁으로 인해 어느 한편에 가담해야 하는 거북살스러운 상황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더 큰 불안은 이들의 권력투쟁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전복할까봐서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념적 터전은 계급간 투쟁을 기반으로 한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다. 계층간 공존을 희구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우리 삶의 터전이다. 병존 시켜야 할 자유와 민주의 가치를 양립시켜 서로 적대하고 국민을 갈라놓는 저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실현을 기대한다는 건 무리다.
가톨릭교회 비판자로 유명한 신학자 한스 큉은 “종교재판이 오늘날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정의의 개념을 우롱한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복음을 조롱한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갈파한 바 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배에 올라 탄 가톨릭이 교회에 대한 복종을 강제한 종교재판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복시키고 스스로 좌초한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계선림은 '우붕잡억'을 지은 이유가 인민이 인민을 학대하는 중국의 미래에선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정치권은 너무 위험한 싸움을 하고 있다. 그들만의 싸움이면 모르되 국민 각계각층을 나누고 분할하고 대립시키는 싸움이다. 이는 계층간 공존이 목표인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적대하는 자기모순적 행위이다. 정치권은 불순한 모자 씌우기 놀음을 속히 멈춰야 한다. 그리고 정 필요하면 각자의 정체성을 국민앞에 고해(告解)하고 보수와 진보, 중도라는 대화와 타협의 기본적 토대에 다시 서야 한다./윤인수〈논설위원〉
누가 저주의 모자를 씌우는가
입력 2004-07-28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4-07-28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