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양국의 국책사업인 평택 주한미군 허브기지 조성 사업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국방부는 9월까지 주민설명회를 마치고 올 정기국회에서 미군기지 이전합의서에 대한 비준 절차를 거친 뒤 내년이 끝나기 전에 토지 매수를 완료한다는 방침이다. 국방부 시간표대로라면 내년말 쯤이면 823만평, 여의도 8개를 합친 평택 땅이 미군의 수중에 떨어진다. 이미 미군이 차지한 400여만평에 용산기지와 2사단 이전을 위해 423만평을 추가 제공하기로 합의한 결과다. 그러나 한미 양국의 구상대로 기지이전이 순조로울 것으로 낙관하기는 힘들다. 평택시의 여론이 이를 수용하기에는 복잡미묘하게 갈려있기 때문이다.
우선 일제시대부터 대대로 주둔군에게 고향 땅을 내주고 쫓겨나는 일에 이골난 기지이전 지역 주민들은 단 한평의 땅도 더 이상 줄 수 없다며 반대하고 있다. 1941년 팽성읍 안정리에 일본군이 기지를 만들면서 시작된 평택 '기지주변 사람들'의 고초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다. 일본군이 물러나자 마자 미군이 기지를 차고 앉더니 끊임없이 기지를 확장시켜 나갔다. 그때마다 그 땅의 붙박이들은 대책없이 쫓겨나야 했다. 제대로 된 보상 한번 없었던 건 물론이다. 안보라는 공공재만 확보할 수 있다면 소수가 죽어나가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던 시절에 그저 그 곳에 살았다는 이유만으로 당해야 했던 야만적 희생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짓을 또 겪어야 한다니 차라리 목숨을 가져가라는 기지주변 주민들의 반발은 당연하다. 이들에게 보상금의 액수를 운운해봐야 감정의 문제가 말로 해결될 리 없다.
미군기지 이전에 호의적인 여론도 전제가 있어 만만치 않다. 평택시가 안보 공공재 실현을 위해 희생하는 만큼 상응한 보상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평택 발전을 법으로 보장하라는 요구다. 평택지원특별법 제정이 찬성의 핵심 전제이다. 법안에 평택시의 자주적 도시설계 인정, 수도권정비계획법 적용완화, 국제평화도시 건설, 이주대책 및 보상의 명문화, 재원조달 방안의 명문화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평택시민들로서는 충분히 요구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문제는 평택의 턱밑인 공주에 행정수도를 건설하겠다는 정부가 평택시만 수도권규제에서 풀어주겠느냐는 점이다.
사정이 이러니 정부가 평택 기지주변 사람들의 해묵은 감정을 풀어주는 일과 평택시의 희생에 상응한 지역발전청사진을 제시하는 일을 뒤로 제친 채 '법대로' 토지수용을 강행한다면 대형사고가 터질 게 틀림없다. 일부 시민단체에서 평택을 '제2의 부안'으로 지목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부는 먼저 잘못된 주한미군 지원정책에 대해 사과하고 직접 피해를 당한 국민들에게 충분한 보상책을 제시해야 한다. 차제에 미군은 물론 우리 군기지 소재지역에 대한 지원을 위한 법과 재원 마련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안보는 전국민이 혜택을 보는 공공재인 만큼 그로 인해 피해를 당하는 소수국민을 지원하는데 세금을 쓰는 건 당연하다. 상수원보호구역 주민에 대한 지원은 가능하고 군사기지 주변 주민에 대한 피해는 외면한다면 이는 세금 쓰는 논리가 아니다. 이같은 논리는 지역경제의 기반인 미군기지가 한꺼번에 빠져나간 동두천에도 적용돼야 할 것이다. 이와함께 기지제공 주체로서 우리의 자주권 행사가 가능하도록 한미행정협정의 개정도 시급하다.
과거와 같이 안보상 필요만을 앞세워 국민의 땅을 요구하다가는, 미군은 물론 우리군 까지도 어디가서 기지건설을 위한 땅 한평 구하기가 힘들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국민의 협력없는 안보는 있을 수 없다. 바뀐 게 있다면 예전엔 국민의 협력을 강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상이 그렇게 바뀐지 오래다. 지금 평택은 폭풍전야의 고요에 휩싸여 있다. 한미 양국의 국책사업을 지지하는 침묵이 아니다. 정부가 하는 양을 지켜본 뒤 대응하겠다는 반발에너지가 잔뜩 충전된 불길한 정적이다. 정부가 평택 상황을 오판하지 않기를 바란다./윤인수〈논설위원〉
평택, 잘못하면 부안 꼴 난다
입력 2004-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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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2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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