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의 요즘 심경은 어떨까. 만일에 남작이 살아있어 최근 올림픽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업지상주의와 국가패권주의에 매몰된 각국의 메달 경쟁을 보고 있노라면 슬픔을 감당키 어려웠을 것이란 상상을 해본다. 정치색이나 상업성을 배제한 채 오로지 스포츠를 통한 인류의 공존과 평화증진만을 구상했던 남작이고 보면 최근의 올림픽 무대는 그를 낙심하게 만들었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지난 30일 열전 17일간 지구촌을 밝히며 평화를 염원했던 올림픽 성화가 꺼졌다. 많은 아쉬움속에 제28회 아테네올림픽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이번 올림픽은 신기록에 도전하는 각국의 스포츠 건각들에겐 의미가 남달랐다. 근대올림픽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고대올림픽 발상지에서 치러진 경기로 이들에겐 일생의 크나큰 영광이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추억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들의 기록은 정당하고 공명정대하게 평가받았어야 했다.
 
하지만 아테네 올림픽은 그렇지 못했다. 전부를 나무랄 수는 없지만 일부 종목의 판정은 추문의 결정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정결과는 끊임없는 시비를 남겼고, 오심에 채점조작 의혹이 불거지며 그에 대한 동기와 배경까지 의심하는 분위기가 가세됐다. 남자체조 개인종합에서 우리의 양태영이 그렇고 역도의 양미란이 그렇다. 그밖에도 우리와는 관련이 없으나 여자배영 200m와 펜싱 플뢰레 남자단체 결승전 등 종목을 바꿔가며 곳곳에서 심판의 과실이 이어지는 희대의 해프닝을 연출했다. 특히 체조에서 잇달은 오심은 결국 관중을 흥분시켰고 야유속에 잠시 경기를 중단하는 전무후무한 일이 벌어졌다. 불이익을 당한 선수가 관중을 진정시켰다면 올림픽의 심판진 작태는 더이상 열거할 필요가 없다. 체조의 요정 코마네치가 한탄했을 정도라면 말이다. 뻔한 규정을 두고 벌인 심판들의 석연치 않은 잦은 오심이 종내는 승부조작설까지 만들며 당치 않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이다'라는 올림픽 강령이 있다. 또한 올림픽은 국가대 국가의 대항이 아닌 개인대 개인의 기록경쟁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올림픽이 메달 경쟁이 아닌 기록경기라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패는 존재한다. 이것이 선수 저마다 지옥훈련을 방불케하는 과정을 거쳐 '인내가 쓴반면 누리게 될 결실은 달다'의 현실을 실현하는 장으로 변모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때로는 결과에 따라 스포츠 백만장자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올림픽의 최근현상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구현되고 있다고 볼 수가 없다. 단적으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앞서의 사례처럼 스포츠정신은 사라지고 선수들을 1등 만능주의에 내몰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비대한 상업주의와 국가간 이기주의는 이를 부추겨 부정적인 측면이 부각되는 대단히 우려스런 상황으로, 선수보호는 아랑곳 없이 치졸한 승리만을 추구하면서 올림픽정신을 짓뭉개고 있다.
 
그러나 역시 중요한 목표의 하나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서 기록을 경신하며 차곡차곡 쌓아가는 명예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당당한 스포츠 정신이며 올림픽이 추구하는 이상이다. 승부도 중요하나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다만 지구촌 스포츠 대제전에 기록으로 도전하는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 또한 인간의 휴머니즘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올림픽역사는 올바른 평가속에 선수들이 만들어 간다. 바꿔말해 뛰는 선수 뒤에 정당한 판정을 이끌어 내는 심판진도 한몫인 것이다. 아테네올림픽은 불필요한 잡음에도 불구하고 개최국 그리스의 노력으로 훌륭하게 치러졌다. 그런만큼 이제는 극성스럽고 어지러운 기억만을 남기는 올림픽 상술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치색은 더더욱 안된다. 올림픽은 영원해야 하기 때문이다. 4년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기대해 보자. /윤인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