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초 우리 가족은 브라질로 이민을 가려고 했었다. 그때 브라질 이민은 우리사회에 마치 열병처럼 번져서 상당수 사람들이 브라질로 이민길에 올랐었다. 미국이민은 여의치가 않았던 시절이라 그래서 택한 것이 남미행이었다. 브라질이라고 하면 축구천재 펠레가 사는 나라로만 알고 있었던 어린 소년에게 브라질 이민은 충격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브라질행은 '설'로 끝났지만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리는 슬픈 기억의 한 편린이다. 70년대 한국사회에 불었던 이민열풍은 정말 폭발적이었다. 한국인들이 이민가기를 가장 원했던 나라는 단연 미국이었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상당수 중산층들이 미국으로 떠났다. 모진 일들을 하면서 그들은 '아메리칸드림'을 이뤘고 이제 미국 사회에서 무시할수 없는 소수민족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그때처럼 2004년 대한민국 사회에 또다시 한국을 떠나려는 움직임이 열풍처럼 불고 있다. 이제는 사람이 아닌 자본이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지난 최근호에서 '한국자본의 엑서더스(대탈출)가 시작됐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기사내용은 대강 이렇다. '한국의 일부 부유층이 상류층에 대한 대중영합적(포퓰리즘)인 공격을 부추겨온 노무현 정부에 불만을 나타내면서 돈을 싸갖고 한국을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기업인들은 노 대통령의 친노동자 성향이 기업활동을 위협한다고 인식, 해외 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해외로 떠날 수 없는 이들은 노후 대비 수단으로 미국 LA나 뉴욕, 중국 상하이 등지에 고가의 주택이나 상점을 매입하고 있다'.
 
비록 미국의 한 잡지에 보도된 내용이긴 하지만 현재 국부 유출은 심각한 정도를 이미 넘어서고 있다. 지난 7월까지 관세청이 적발한 불법외환거래액은 2조7천555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155% 증가한 액수다. 자산을 빼돌리는데 주로 사용되는 환치기를 통한 거래는 1조1천241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0배 증가했다. 이같이 빼돌린 자금은 외국에서 부동산 매입에 주로 이용되는데 덕분에(?) 런던의 집값을 두배 올리고 LA 코리아타운 주변의 주택가격이 치솟는가 하면, 상가 임대경쟁률이 20대1에 이를 정도로 미국 부동산 시장에 한국에서 흘러든 자금이 넘쳐 흐르고 있다.
 
아마 정부는 이번 뉴스위크 보도에 상당히 불쾌했을 것이다. 한국 실정을 모르는 미국의 한 잡지가 괜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우리 경제는 튼튼하기 이를 데 없는데 언론의 속성을 버리지 못한 한 미국 주간지가 한국 정부를 헐뜯기 위해 '심히 부적절한 기사'를 실었다고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정정보도'를 요구할 생각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이 기사를 신뢰하고 있다.
 
시중 금리는 이미 마이너스 시대에 접어들었다. 한국은행에 금리 인하 압박이 가중되면서 지금도 은행권의 자금 이탈은 가속도가 붙어 빠져 나가고 있다. 이 와중에도 정부는 국내 소비를 살리기 위해 추가금리 인하를 신중히 고려하고 있다. 이미 미국의 금리는 한국 보다 높고, 우리나라의 채권수익률은 미국보다 낮아 투신사를 비롯해 국내 금융기관들은 자금을 미국에서 운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미간의 금리 역조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 모두 금리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만 유독 금리를 인하하고 있다. 돈이란 물같아서 이익이 있는 곳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자금의 엑서더스가 정정이 불안하고 향후 한국경제 전망이 암담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진 않겠다. 가진자에 대해 극도로 불신감을 표출하는 이해못할 사회분위기 때문으로 몰아붙이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적어도 정부는 돈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정부가 앞장서서 제거해야 한다.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 담는 것은 불가능하다. 더 이상 엎지르지 않게 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지금 일어나는 부의 유출은 장난이 아니다. 꿈이었으면 좋으련만 슬프게도 실제상황이다. /이영재(경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