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일, 중, 러 네 마리 코끼리의 파워게임에 한국은 결코 대등한 파트너나 레퍼리(심판)가 될 수 없는 한 마리 토끼라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모른다. 2002년 5월 파스칼 라미(Lamy) EU 집행위원은 미국을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병든 코끼리’에 비유했지만 대부분의 문명비평가는 견해를 달리한다. 21세기 역시 가장 힘센 코끼리의 ‘팍스 아메리카나’ 세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단(豫斷)한다.
한반도 면적의 42배, 1개 텍사스주(69만2천여㎢)만 해도 한반도의 3배가 넘는 국토에다 인구 2억8천의 미국은 상원이 지난 7월 22일 승인한 2005회계연도 국방예산만도 4천175억달러(약 501조원)나 된다. 그런데 190개 유엔 회원국 중 가장 강한 나라의 위상은 군사력만으로 잡히는 게 아니다. UN 등 세계 정치질서와 에너지, 통화, 생산, 무역 등 세계 경제질서는 물론 과학기술력, 정보력, 교육과 문화, 언어의 힘, 무엇보다 두뇌, 인재의 힘 등이 오케스트라 화음처럼 작용해야 가능하다. 외계와 지구의 전쟁이 터져도 외계인이 알아듣는 유일한 지구 언어는 람보 국가 미국 영어일지 모른다. 노벨상만도 미국은 230여명이나 휩쓸었다. 그런 미국에 전세계 인재가 몰린다. 명문 중의 명문인 케네디 스쿨(하버드대 행정대학원)을 비롯해 MIT, 콜롬비아, 스탠퍼드, 예일 등 2002학년도 미국 대학과 대학원에 등록한 외국인만도 58만3천명이었다. 미국 명문대 대학원생의 3분의 1 이상이 외국인이고 통상 30개국의 통치자가 미국 유학파다. 일찌감치 ‘강대국의 흥망’을 쓴 폴 케네디가 ‘제국의 위험(The perils of Empire)’을 경고했지만 미국은 아니라는 견해도 그런 연유다.
인구 1억3천에 38만㎢의 경제대국 일본은 어떤가. 1995년 세계 500대 기업의 매출 순위 14위를 휩쓸었고 아시아 500대 기업의 17위까지를 석권한 나라가 일본이다. 수출 1천억달러도 한국이 95년에 달성했는데 비해 일본은 16년 전인 79년에 해냈고 2002년 예산만도 81조2천300억엔(한국은 112조원)이었다. 경제 규모가 한국의 8~~10배다. 과학기술력도 ‘저팬 애즈 넘버 원(Japan as No. 1)’을 외쳐댄다. 91년 걸프전 때 미국이 성능 실험을 한 첨단무기 부품의 80%가 일제였다지 않은가. 그러니까 맘만 바꾸면 핵무기도 손바닥 뒤집듯 양산할 수 있는 목하(目下) 군사대국 지향국이 일본이다. 한반도 면적의 43배, 1개 칭하이(靑海)성(72만㎢)만도 한반도의 3배가 넘는 대륙과 13억 인구로 비약중인 중국과 인구 1억5천에 1천707만㎢라는 엄청난 덩치의 러시아를 떠올려도 위압감에 눌린다.
우리는 ‘늑대와의 춤’이 아니라 네 마리 코끼리와의 춤을 춰야 산다. 92년 대선 때 YS와 DJ가 운운한 ‘21세기초의 5대 강국’은 잠꼬대 같은 소리였다. 우리는 아직 선진국, 강대국엔 거리가 멀다. 땅덩이, 인구, 군사력도 그렇고 경제력도 1인당 GNP가 세계 54위에 불과하다. 일부 잘 나가는 산업도 있지만 원천기술은 턱도 없이 처져 있다. 이런데도 스위스 세계경제포럼(WEF)이 엊그제 분석한 우리의 국가경쟁력은 작년보다 11단계나 추락했고 중국 9.8, 인도 8.2, 싱가포르 7.5, 홍콩 7.0 등 금년 2/4분기 아시아의 고도성장 속에 우리만이 나홀로 침체(5.5)돼 있다. 이라크에선 ‘코리아’를 ‘꼬리’라고 부른다. 우리는 190개 유엔 회원국의 꼬리(尾)로 추락하는 것인가. 우리는 아직 미국과 대등한 관계로 갈 수 없다. 밟혀 죽지 않으려면 가장 강한 코끼리 미국을 위시한 네 마리 코끼리와 좋든 싫든 춤을 춰야 산다. 찬미주의와 사대주의가 아니다. 100년 전이나 이제나 네 마리 코끼리의 자장(磁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50년, 100년 뒤의 한국이라는 토끼 인자가 돌연변이, 5대 강국의 코끼리로 자란다 해도 기타 네 마리 코끼리와 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吳東煥(논설위원)
네 마리 코끼리와 춤을…
입력 2004-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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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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