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보스턴에서는 미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한 보스턴 레드삭스를 두고 열광의 도가니가 식지 않고 있다. 소위 말하는 '밤비노의 저주'가 풀렸다는 것이다. 86년만에 정상에 등극한 보스턴의 레드삭스는 이제 밤비노의 저주는 없다고 공언한다. 보스턴은 굿바이 밤비노를 목청 높여 외치고 있는데 알다시피 밤비노는 베이브 루스의 애칭이다.
 
그런가 하면 시카고 컵스는 아직도 '염소의 저주'에서 맴돌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45년 월드시리즈가 열리는 경기장에 애완용 염소를 데리고 입장하려는 시카고 컵스 열성팬이 저지당하자 분한 마음에 다시는 이곳에서 월드시리즈는 볼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데서 비롯됐다. 훗날 아직까지 시카고 컵스는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적이 없다. 물론 이들 양팀은 처음에는 저주얘기가 돌자 웃기는 일로 치부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상황이 단순하지 않았다. 해가 가면 갈수록 경기는 꼬이고 계속되는 불운과 불행이 팀을 어렵게 만들며 깊은 슬럼프에 빠지게 했다.
 
보다못한 레드삭스의 열성팬들은 베이브 루스를 방출하며 시작된 저주를 풀기위해 2002년 당시의 레드삭스 유니폼을 입고 보스턴 근교 연못에 루스가 빠뜨렸다는 피아노 인양 작전을 벌여 연주회를 시도했다고 한다. 이것이 효과를 봤는지도 모를 일이다. 답답한 시카고 컵스 역시 이후에 염소를 경기장에 데리고 와 보기도 하고 60년 전에 저지당했던 사람의 손자들을 경기에 무료로 관람하게 하는 등 별수를 다써봤으나 아직까지 답변없는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지난달 28일부터 수일간 계속된 대한민국 국회는 그야말로 민생은 안중에도 없이 끝으로 치닫는 정쟁의 한판이었다. 가뜩이나 당·당·청이 빚어내는 각종 사회혼란에 골머리가 휘둘리는 국민들 앞에, 의연히 국정의 중심적 지렛대 역할이 요구되는 행정부까지 가세한 어이없는 리턴매치는 한마디로 경악을 주기에 충분했다. 답변과 질의를 하는 당사자들 품위는 간곳없고 악의에 찬 공세는 어떻게 하든 상대방 흠집부터 내고 보자는 식이다.
 
다행한 일은 이미 국민들이 이런 모습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문제가 조금은 다른듯 하다. 상황이 거의 저주에 가깝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국회가 때로는 조소거리로 등장하기도 하고 비아냥의 대상이 된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듣기에도 숨막히는 막말이 오가는 자리는 분명 아니다. 그런데, 국민의 대의 기관이 이처럼 총리에 의해 철저히 우롱당하기는 처음인듯 하다.
 
지금 경제는 심각하다. IMF때보다 어렵다는 국민의 원망은 지난 얘기가 됐고 국정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갈피를 못잡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서민들은 요즘같아선 밥먹고 살기도 어렵다는 아우성이다. 도처에서 영세상인이 도산하고 이제는 상경해 농성도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이다. 국회의원이든 행정각료든 도저히 편안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임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무엇을 두고 하는지 모르지만 기싸움은 여전하다. 정말 국민은 피곤하다.
 
이번 레드삭스가 저주의 굴레를 벗어나는데는 나름대로 묘약이 있었다. 야구에 치명적인 닉네임 '삼진왕' 등 한물간 선수를 버리지 않고 포용과 상생을 구현한 구단측의 신뢰다.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이 혼연일체 3대의 괴력을 뛰어 넘었다. 특히 삼고초려로 모셔온 커트 실링이 보인 불같은 투혼은 피에 젖은 빨간 양말로 표현됐다. 이쯤됐으니 실체없는 저주를 걷어들일 수 있었으리라. 세상이 어지러울 땐 국민을 이끌 현명한 선봉장이 필요하다. 더욱이 그 흔하디 흔한 상생의 단어가 절실한 시점이다. 계속되는 공허한 언동으로 우리가 스스로 저주의 굴레에 갇히는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면 종내는 모두에게 독약이 될 것이다. 훗날 이것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행위가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정치권도 묘약이 필요하다./윤인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