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씨 성을 호적부에 한글로 표기할 때는 '류'가 아닌 '유'로 적어야 하고 '李'씨, '羅'씨도 '리' '라'가 아닌 '이' '나'로 써야 한다”고 엊그제 대법원이 확인하자 '柳씨 종친회'에서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대로 물려받은 고유명사인 성씨 표기를 법으로 규제한다는 것은 위헌”이라며 헌법 소원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논고 요지는 이럴 듯싶다. “한 나라의 언어란 그 누구도 아무렇게나 함부로 지어 말할 수 없고 임의대로, 되는대로 표기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 나라의 언어 질서는 엉망이 될 것이다. 따라서 언어민족 공동체의 언어에 대한 공약과 규약은 필요한 것이며 표준말과 문법, 어법, 철자법도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성씨 표기라고 해서 국어에서 예외일 수 없고 마땅히 성문법 규정인 두음법칙을 준수해야 할 것이다.” 재치 있는 대법관이라면 이렇게 부연할지도 모른다. “만약에 두음법칙을 무시한다면 북한의 로동신문, 릉나도처럼 라체(나체) 락제(낙제) 란동(난동) 랍치(납치) 랑보(낭보) 래년(내년) 량심(양심)으로 표기해야 하고 '례의(예의)와 륜리(윤리)에 대한 론란(논란)'이니 '령혼(영혼)을 뒤흔든 련애(연애)'니 '녀자(여자) 로인(노인)이 렬차(열차)를 타고 력사(역사) 려행(여행)을 떠나 료리(요리)도 즐겼다'고 쓸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야구감독 '宣銅烈'은 '동열'이 아닌 '동렬'이고 '諸葛亮'은 성 따로 이름 따로 두음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에 '제갈량'이 아닌 '제갈양'인 것이다.”
 
'劉, 兪, 庾'씨를 같은 '유'로 표기하는 것도 문제다. '劉'의 원음은 '류'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劉'씨와 '李, 羅 林'씨도 뒤따라 헌법 소원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한데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짚고 넘어갈 게 있다. '한글로 표기된 성씨가 과연 고유명사인가' 그것이다. 아니다. '柳, 劉, 兪, 庾'씨를 '유'로 통일한 한글 표기는 고유명사가 될 수 없다. 고유명사란 원래의 생김새 그대로 '柳, 劉, 兪, 庾'라는 글자다. '유'든 '류'든 그건 변칙명사, 변형명사지 원형 그대로의 고유명사가 아니다. '李'와 '異', '林'과 '任', '鄭'과 '丁', '趙'와 '曺'의 한글 표기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홍길동'은 '吉童'일까 '吉東'일까 '吉同'일까를 상상해야 하고 봉이 김선달은 '先達'일까 '善達'일까 '宣達, 鮮達, 仙達'일까를 추상해야 하는 비고유명사지 고유불변의 명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유명사란 고유 그대로 한자를 쓰는 게 옳고 정도(正道)다. 그러면 아무런 문제도 있을 수 없고 예컨대 '王大寧'씨를 '왕대영' '왕대녕' '왕대령'으로 적을 수 있는 혼동도 막을 수 있다. 한자 이름의 한글 표기는 마치 영어권 이름을 발음만을, 일본인 이름을 가나(假名)로만 적는 어처구니없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柳氏'를 '유씨'로 적는 게 인격권, 개성권, 행복권 추구에 역행한다는 '柳씨 종친회'의 주장보다는 '柳'의 한글 표기야말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헌법소원의 올바른 판결도 '류'냐 '유'냐가 아니라 “柳를 고수하라”가 돼야 할 것이다.
 
고유명사인 한자 성씨를 한글로 표기, 변칙, 변형명사를 만드는 무지는 어디서 연유하는 것인가. 한자가 중국 글자라는 인식 때문인가. 물론 한자는 중국 원산이지만 이미 2천년 전에 이 땅에 들어와 귀화해 우리만이 쓰고 있는 '韓字'가 돼버린 글자다. 한, 중, 일의 한자는 각각 음도 다르고 뜻도 다르다. 한자를 버리자는 것은 마치 로마자를 쓰는 영, 독, 불어를 버리자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한자 성씨를 한글로 쓴다고 해서 한자의 근본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한자 성씨가 싫다면 '李 王 張 劉 陳 楊 趙 周 吳 徐 孫 宋 高 林 郭' 등 중국서 귀화한 성씨는 당장 창씨(創氏), 갈아야 할 게 아닌가.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