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신문에선가 신인 여가수가 서울역을 찾아 노숙자들을 위로하고 빵과 음료를 나누며 희망의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선사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여러분도 한때는 행복한 가정을 꾸린 가장이었다”며 “당장은 힘겨워도 그때를 기억하며 희망을 잃지 말자”고 격려했다니 그 마음이 얼마나 따사롭던지…. 엄동설한 한겨울 길거리에서 추위와 절망에 시달리는 노숙자에게 그 여가수의 따뜻한 위로는 그야말로 천상의 복음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매년 연말이 되면 우리사회 곳곳에서는 불우이웃돕기 행사가 벌어진다. 그중에서도 자선냄비는 연말 온정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남비 모금액은 우리사회 온정의 지표처럼 여겨져왔다. 골깊은 불황의 터널에도 그 자선냄비 온정이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역시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하는 것은 어려운 때 일수록 민초들 속에서 녹아 나오는 훈훈한 인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며 안도감을 느낀다. 비록 연례행사라 해도 바쁜 일상에서 한번쯤 불우이웃을 되돌아보는 연말의 자선 행렬은 우리가 함께 사는 공동체의 소중함을 체험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올해는 참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사건사고가 많았던 해로 기록될 것이다. 전대미문의 연쇄살인 사건이며 경찰관 살해도주 사건, 불량만두소 파동, 한강다리 자살 신드롬, 유명 운동선수와 연예인들의 병역기피사건, 휴대전화를 이용한 대입시험의 대규모 부정행위, 그리고 조그만 마을을 송두리째 뒤흔든 미성년자의 집단성폭행사건 등 헤아리기 조차 벅찬 대형 사건들로 불황에 찌든 민심은 더욱 고단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정치권에 불어닥친 삭풍은 어느해 보다 감당키 어려웠다. 기존 정치권의 일대 지각변동을 불러온 대통령 탄핵과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 고 김선일씨 참수사건과 이라크 파병결정, 국보법 등 4대법안이 불러온 국회공전과 파행 등 정치적 격변이 이런저런 집회의 촛불속에 출렁거리지 않았던가.
 
뭐니뭐니해도 우리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건 삭막한 세상에 희생되는 어린이들의 참변이다. 생활고에 내몰려 한가족 동반 자살에 휩쓸린 어린이나, 어른없는 집을 지키다 화마에 희생된 어린이, 장롱속에서 아사한 어린이 등 아무리 우울한 한해였지만 이런 소식들로 연말을 보내야 하는 우리는 너무 불행하다. 작금의 심각한 경제난에 의한 서민들의 생활고는 자포자기 단계를 넘어 이제는 우리사회의 건강성 마저 위협하는 지경이니 큰 일 아닌가.
 
어느덧 갑신년은 이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경기불황의 장기화는 실직·신용불량자를 양산하며 비교적 안정권에 놓여있던 중산층을 무너뜨리고 있다. 그러니 빈곤층의 고통은 새삼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거리에는 노숙자가 넘쳐나고 국민들은 힘겨워 한다. 그래도 정부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힘들어 죽겠다는 국민의 원성이 진보와 보수의 아귀다툼 속에 묻혀버렸으니 참여정부의 개혁이 힘을 받을 리 없고 야당의 여당비판이 지지받을 리 없다. 올 한해 살아가는 재미를 뒤로 제껴야 했던 각계각층 모든 국민들은 그저 갑신년의 난리가 새해를 위한 액땜으로 그치길 비는 마음 간절할 것이다.
 
며칠 있으면 을유년 새해가 밝아온다. 입만 열면 민생국회를 부르짖던 국회가 연말이 가기전에 난제를 풀고 내년부터 민생문제에 전념하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결국 4인회담이 결렬됐다는 소식이다. 대승적 자세가 아쉬운 국회다. 시민단체는 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숙자 수가 연간 350여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대한 정확한 통계마저 없다고 하니 당리당략에 함몰된 여야 정당과 하나 다를 바 없는 사람들 아닌가. 어떠한 개혁정책도 먹고 사는데 우선할 수는 없다. 내년에는 대통령, 청와대, 정부, 여·야 국회의 정치권 전체가 서민 경제를 살리는데 적극 나서길 기대해 본다. 싸워도 먹으면서 싸워야 할 것 아닌가. /윤인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