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처럼 살겠다.” 새해 덕담을 나누는 자리에서 어느 동료가 털어놓은 신년계획이다. 하루살이라…. 처음엔 유행 지난 말장난같더니 곱씹어볼수록 의미가 그럴듯하다. 일간신문을 만드는 직업적 특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갈수록 변화무쌍해지는 시대를 사는 지혜로서 그만한 다짐도 없겠다 싶다. 그럼 나도 슬쩍 벤치마킹해 볼까. 하루살이답게 살자!
하루살이는 하루만 사는 곤충이 아니다. 성충은 인간의 척도로 기껏해야 몇시간, 길어야 하루 정도 살지만, 유충으로 지내는 시간은 꽤 길다. 대개 1년이고, 어떤 종류는 3년씩이나 기다린다. 성충이 되어 엄숙한 '혼인비행'을 할 날을 차분히 준비하는 것이다. 성충 하루살이는 자지도 먹지도 않으면서 후세를남기기 위한 짝짓기 비행에 나선다. 마지막 혼신의 힘을 불살라 사랑을 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작업에 몰두한다.
물론, 하루살이가 주는 어감이 고울리 없다. 무계획적이고 무모하고 허접스런 삶의 상징이 하루살이 아니던가. '하루살이같은 삶'이라는 표현 뒤에도 소시민적 무기력함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다. 역사적 허무주의의 악취도 난다. 하지만 그것도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내 아무리 멋진 계획을 세우고 굳은 의지를 다진들 쓰나미처럼 덮쳐오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속수무책이라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차라리 하루살이처럼, 하루살이답게 자신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 오늘을 충실하게 살아내느니만 못하지 않을까. 하루하루를 생의 첫날처럼, 끝날처럼….
'생마 갈기가 외로 질지, 바로 질지'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어린 말의 갈기가 어느 쪽으로 넘어갈지 예측할 수 없듯이, 어린아이의 장래는 미리 알 수 없다는 게 본뜻이다. 그런데 올 연초에는 이 속담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2005년의 갈기가 과연 어느 쪽으로 질 것인가. 한반도를 덮은 먹구름은 우중충하고, 경제는 어렵고, 정치는 어지럽다. 사방이 가물철 수숫잎 꼬이듯 꼬였다. 대립과 분열의 골 또한 너무 깊다.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어설픈 화해와 봉합은 물론 정답이 아닐 것이다. 갈등을 극단까지 밀고가서 해결하는 방식도 썩 좋은 해법은 아닐듯하다. 그렇다고 자기 울타리 안에 틀어박혀서 폭풍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변화를 주시하며 내일을 위한 알낳기에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은 변한다. 그러나 변화가 어느 방향에서 어느 때 닥쳐올 것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어느 구름장에 비꽃이 들었는지 누가 알겠는가. 반면에 역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북경의 나비가 뉴욕에 폭풍우를 몰고오는 '나비효과'가 있다면, 하찮은 하루살이들의 날갯짓이 저 답답한 구름장들을 말끔히 걷어주는 힘찬 바람이 되는 '하루살이효과'가 없으란 법도 없지 않을까.
사실,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하루살이답게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듯하다. 매일 새롭게 집중하기 위해서는 어제를 말끔히 잊어야 한다.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한 지금 이 순간의 순도를 유지할 수 없다. 쉼없이 꿈틀대는 내일을 향한 욕망도 버려야 한다. 끊임없이 자신을 비우고 비워서 새로운 날들이 들어올 자리를 만드는 일이 어찌 쉬울 수 있으랴.
새해 결심을 한다는 게 어쩌다보니 스트레스만 늘게 생겼다. 하지만 생리학에 스트레스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셀예라는 학자가 그랬다던가. '개를 친구로 보느냐 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우리 몸의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생화학적 성분이 달라진다.' 2005년의 하루하루를 해볼만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느냐, 불가항력적인 시련으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뿌듯한 한해가 될지 스트레스로 가득찬 해가 될지 판가름날 터이다. /양훈도(논설위원)
하루살이답게 살기
입력 2005-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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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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