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26일 남아시아 지진→해일이 발생하자 이튿날 아침 7시 TV 뉴스부터 보도 기자와 앵커는 줄곧 “남아시아 일대가 초토화됐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나간다는 어느 신문도 28일자 지면에 '태국 푸케트 초토화'라는 제목을 달았다. '초토화(焦土化)'가 무슨 뜻인가. '焦'는 '탈 초'자다. 전쟁으로 폭격을 맞거나 화재가 나 모두 타버리고 재만 남은 상태가 '초토'다. 그런데 해일로 물바다가 됐다가 쓸려간 자리를 가리켜 '초토화됐다'니? 이야말로 물인지 불인지,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망발이 아니고 무엇인가. 작년 9월20일 아침 모 방송 워싱턴 특파원도 “허리케인으로 플로리다주 일대가 초토화됐다”고 하는 등 홍수가 날 때마다 TV에선 물을 가리켜 불이라 하니 기가 막힐 일이 아닐 수 없다. '초토화됐다'는 말 자체도 어폐가 있다. '화'는 '될 화(化)'자다. 따라서 '초토화됐다'고 하면 '됐다'는 뜻이 겹친다. '됐다'를 붙이지 말고 '초토화'로 쓰는 게 옳다.
어떻게 이 같은 말이 반복되는 것인가. 까닭이야 말할 것도 없이 '탈 초(焦)'자가 머리에 입력돼 있지 않아 인지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물과 불을 가리지 못하는 말이 '초토화'라면 밤중인지 새벽인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방송 용어가 또한 '새벽 1시'다. 남아시아 의료진, 자원봉사단이 '새벽 1시'에 어디에 도착했다는 등의 말을 서슴지 않는다. 1시, 01시는 자시(子時)인 한밤중이지 새벽이 아니다. 1시가 새벽이면 그럼 2시에 해가 뜨는가. 새벽이란 날이 밝을 녘, 먼동이 틀 무렵, 해가 뜨기 직전의 시간대다. 여름엔 5∼6시, 겨울엔 4∼5시경이 새벽이다. 여명, 서광이 비칠 때가 새벽이다. '새벽 1시'가 아니라 '오전 1시'다.
그런가하면 한자와 순 우리말을 분별치 못해 잘못 말하는 대표적인 방송 용어는 또 '강추위'다. '강추위'란 눈을 동반하지 않은 '맨 추위'를 가리킨다. '강'은 强이나 剛 등 한자가 아니라 순 우리말 접두사다. 눈물도 안나오는데 억지로 우는 울음인 '강울음'이나 '강새암을 부린다' '강짜를 부린다'고 할 때의 '강'과 같은 뜻이 '강추위'의 '강'이다. 그런데도 “울릉도엔 많은 눈과 함께 강추위가 몰아쳤다”는 등 방송 뉴스에선 여전히 '강추위'를 연발한다. 눈과 함께 닥친 추위는 '맹추위'가 적절한 말이다. 참고로 '강더위'라는 말도 있다. 작년 여름처럼 비가 오지 않은 채 오래 계속된 더위가 바로 '강더위'다. 교육 부총리의 '전격 사퇴'라는 말도 우습기 짝이 없다. '전격(電擊)'이라는 말은 군사용어다. 번개처럼 갑자기 적을 들이치는 게 '전격'이다. 그런데 이기준 부총리의 경우 임명 당초부터 '기준(?)'이 안 맞아 예고된 사퇴였고 예고된 번개(사퇴)로 이미 천둥은 우르릉거렸었다. 그런데 무슨 '전격사퇴'란 말인가. 그리고 웬 '전격 방문'은 그리도 많고 '전격 발표' '전격 임명' '전격 교체'는 그리도 흔한 것인가.
이처럼 적절치 못한 방송 용어가 반복되는데도 말리고 바로잡는 기능이 없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야 두 말 할 것도 없이 언어에 대한 무감각과 특히 한자 교육 부재 탓이다. 한자를 사용하는 지구인은 20억,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인구보다도 많다. 이제 '한자를 모르면 지능이 떨어진다, 우리말과 문화의 뿌리와 척추인 한자를 뽑아 버리고 빼 버릴 수는 없다, 그러면 우리 문화는 죽는다'는 등의 이유보다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과 교역,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한자 교육은 절실하다. 일본이 제2 외국어로 중국어를 채택한 이유도 중국이 고와서가 아니고 삼성 등 우리의 대표적인 기업들이 한자를 중요시하는 것도 필요성, 실용성 때문이다. 그런데도 '모든 공문서는 한글로만 써야 한다'는 따위 '국어기본법'이나 만들고 있으니 지독히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불을 가리지 못하는 처사가 왜 이리도 흔한 것인가./吳東煥(논설위원)
南아시아가 '초토화됐다'고?
입력 2005-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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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1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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