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시나트라의 수많은 히트곡중 하나인 마이웨이(My Way)는 자신의 생애를 서사적으로 읊은 불후의 명곡이다. 연배가 지긋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폼나게 불러보고 싶은 곡이지만, 프랭크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기는 여간 어렵지 않다. 생애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온 인생을 독백하듯 되돌이키며 만족한 미소를 짓는 사나이의 기품어린 표정, 그런 표정으로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하고픈 보통사람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늘 멋있는 인생을 꿈꾼다. 김영삼 처럼 중학교 시절부터 대통령의 꿈을 키우고 싶고, 카이사르와 같이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며 세상을 호령하다가, 맥아더 처럼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질 뿐이다”는 근사한 퇴장의 변을 남기고 싶어한다. 그러나 세상이 큰 인물들로만 넘친다면 비극일 것이다. 그들의 빛나는 인생 뒤엔 그들의 욕망 실현에 이바지한 수많은 보통사람들의 인생사가 고여있다. 보통 사람없이 위인이 탄생할 수 없는 건 시대를 초월한 진리이고, 이제는 보통사람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민주주의의 세상이다. 보통 사람들의 인생이 권력과 금력과 명예를 가진 자들의 인생 만큼이나 소중하게 대접받아야 할 세상인 것이다.
 
그러나 만인의 인생이 평등하게 존중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어디까지나 지향해야 할 대상이지 실현 대상은 아니라는 점이 보통 사람들을 절망시키곤 한다. 72세의 노구를 이끌고 북한을 탈출했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 다시 북송된 한만택씨의 인생유전은, 어떤 정치제도하에서도 희생되는 인생이 있기 마련이라는 비참한 진실을 일깨워 준다. 늙은 노병이 프랭크와 같은 인생 서사를 남기려 조·중 국경을 넘었을리 없다. 반세기 훨씬 전에 포로로 잡힌 그 순간 부터 그의 인생은 멈춰버렸을 것이다. 그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에서 이루려 했던 꿈은 단 하나, 고향 땅에 돌아가 늙어버린 가족과 얼굴 모를 후손들과 재회한 뒤 그 땅에 묻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가 고국 땅을 밟아 가족들에게 하고팠던 가슴속의 한마디는 무엇이었을까. '나 이제야 돌아왔네' '너무 늦게와 미안하네' '이제 여한이 없어'…. 그러나 그는 조국 땅을 밟은 노병의 육성을 남기지 못한 채 다시 적진으로 반송됐다.
 
남한의 가족들이 노병을 대신해 분노를 터트렸다. 노병의 조카는 대한민국 정부가 삼촌에게 수여한 훈장을 청와대 면회실에 내팽개치듯 반납했다. 그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전쟁터에 나섰다가 적에게 포로가 된 삼촌의 생존이 확인된 만큼 정부가 그를 데려와 직접 그의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라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요구이다. 지금에 와서 6·25가 어떻게 재해석되고 있건, 또 국정운영 주체들의 사관(史觀)이나 대북관이 무엇이건간에 당시의 적에게 억류된 자국 병사의 생환을 위해 노력하는 국가의 의무가 면책될 수는 없는 일이다.
 
노병 한만택은 중국공안에게 끌려 다시 북한 땅을 밟으면서 무슨 말을 남겼을까. 아니 그 심경은 어떠했을까. 아마도 북에서 받을 고통은 심중에 없었을 것이다. 그보다는 일생의 꿈이었던 본대 복귀의 희망, 귀향의 염원이 성취되기 일보직전에서 무산된 비통함이 그의 가슴을 찢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니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는 말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빛이 꺼진 노병에게 무슨 할 말이 남아있겠으며, 남아있다 한들 무슨 기력으로 말을 꺼내겠는가. 가슴이 미어질 일이다.
 
자국의 늙은 병사 하나 데려오는데 말을 아끼는 대통령과 정치인, 지식인들이다. 그들도 인생을 마무리할 즈음엔 근사한 인생회고담을 내놓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병 한만택을 데려오지 않고는 그들이 보통 사람들을 영도한 지도자입네 자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늙은 노병이 그들에게 말한다. “날 데려가다오.”/윤인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