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든 형벌 중에서 가장 잔인하면서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사형제가 드디어 한국에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6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정식으로 국회에 사형제 폐지의견을 제출했기 때문이다. 이번 인권위의 결정이 법적 구속력은 없다할지라도 국가기관 최초의 결정이란 점에서 그 상징성과 파장이 적지 않다. 벌써부터 누리꾼들은 사형제 폐지와 존치 측으로 패가 갈려 사이버공간을 달구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법리공방을 준비하고 있다. 조만간 사형제 폐지에 대한 국민여론이 비등할 전망인데 국민여론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현재 국회 법사위에서 심의중인 ‘사형제폐지특별법안’의 본회의 통과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인권관련 시민단체들은 인권위의 결정을 환영하고 있다. 이들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데는 생명의 소중함과 인권 때문이다. 인권위원회는 현행 사형제가 헌법 제10조(인간존엄가치 및 행복추구권)와 제37조 제2항(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사형제도는 국가가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으로 그 자체가 살인행위”라고 오래 전부터 목청을 높이고 있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도 사형제는 인간의 기본적 권리인 생명권을 정면으로 부인하는 반인권적 국가제도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이번 인권위의 결정이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유엔인권협약의 취지에도 부합한다는 것이다. 사형제가 존치되는 한 인권선진국으로의 도약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사형제 폐지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대세임도 강조한다. 2005년 2월 현재 전세계 여러나라들 중에서 사형 폐지국은 118국인데 반해 사형 존치국은 78국이다. 사형존치국에 포함된 나라들 중에는 우리나라를 비롯, 미국, 일본을 빼곤 대부분이 중국, 북한 등 후진국들이다. 더욱이 이들은 사형제의 범죄예방효과가 증명된 바 없다는 점과 오심으로 인한 억울한 희생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76년 이후에 사형이 선고된 7건 중 1건이 무죄임이 밝혀졌다. 그리고 최근 사법살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인혁당사건처럼 집권세력들이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라도 사형제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주장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사형제 존치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월등하게 크다. 김승규 법무장관을 비롯, 검사의 90%가 존치를 주장하고 있다. 한 포털사이트의 사형제 찬반조사에 7천여명의 네티즌들이 참가, 72%가 반대했다. 댓글로 올린 것 중에는 “국가가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안되고 인간이 인간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괜찮나”, “당신의 가족이 범죄의 표적이 되어 무참히 살해돼도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겠는가”, 혹은 “살인마 유영철을 살리려고 사형제를 폐지하는가”라는 등 심지어 세금만 축내는 인권위의 해체를 주장하는 글도 발견된다. 사어버공간만 보면 분위기가 험악하다.
2001년 이후 서울에서만 발생한 강력범죄건수가 하루 평균 약 400여건이다. 살인은 이틀에 한번, 강도와 강간은 매일 각각 6건, 4건 이상 발생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5대 강력범죄가 하루평균 236건씩 발생하고 있다. 세월이 흐를수록 강력범죄건수는 늘어만 가고 범죄수법도 더욱 흉포해지는데 사형제 폐지를 운운하니까 국민들이 거칠게 반응할 밖에.
일본에서도 지난 2003년에 사형제 폐지건이 국민들의 압도적 반대에 직면, 좌절된 바 있다. 최근 유럽에서도 사형제 부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형제의 존치만으로도 범죄예방의 상징적인 효과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현 단계에서 사형제 폐지는 시기상조이다. 인권선진국보다는 민생안정이 우선이란 점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이한구(객원논설위원·수원대교수)
흉악범과 인권
입력 2005-04-13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5-04-13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