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세계 인구 추계치가 아니다. 어느 고위층 인사의 재산공개 액수도 아니고 어느 소기업의 작년 판매고도 아니다. 이 숫자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체 없이 직고(直告)하기 전에 철학적 질문부터 던져 보자. “인간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닌 인간은 부모라는 두 핏줄을 타고 고이 지상에 던져진다. 그런데 부모라는 두 핏줄은 조부모와 외조부모 핏줄로부터 연결되고 이들 4인은 또 증조부모와 외증조부모 8인의 핏줄을 타고 내린다. 그래서 8→16→32→64→128…의 끝없는 배수의 핏줄로 불어난다. 이렇게 33대 조상까지만 거슬러 올라가 보자. 까마득한 역 피라미드, 거대한 역삼각형 조상탑이 하늘을 뚫을 듯 뻗쳐 올라간 형상을 자신의 머리 위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33대까지의 자기 조상 수가 무려 85억8천993만4천592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현재의 세계 인구 육십 몇 억을 비교하더라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숫자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쳐도 33대 조상까지는 990년 전에 불과하고 옛날처럼 한 세대를 20년으로 치면 660년 전, 겨우 고려 말 그 시절이다. 그러니 예수, 공자, 석가모니 시대까지의 자기 조상은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것인가.
 
인간은 상상도 할 수 없는 몇 억, 몇 조분의 1 확률로 귀하고 귀하게 세상에 온 존재다. 그렇다면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냥 들숨 날숨 숨을 쉬고 있는 존재만으로도, 가슴 속에 시뻘건 염통 피 샘이 솟구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하늘과 땅에 감사해야 하고 길가의 한 송이 꽃, 발끝에 꼬물거리며 기어가는 벌레 하나에도 엎드려 절을 하도록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그래야 자신이라는 인간 존재, 생명의 핏줄을 이어내린 몇 조, 몇 십조의 조상이 일제히 하강하고 솟구쳐 “맞아 맞아” 동의의 박수를 보내줄 게 아닌가. 그럼 이토록 귀하디귀한 인간의 값어치를 돈으로 치면 얼마나 되는 것인가.
 
육신분석학자, 사체분석학자로 유명한 뉴욕대의 바인더박사가 몸무게 70㎏정도 어른의 육신을 화학적 물질로 분류, 분석했다. 그 결과 수분 70%를 뺀 나머지 30%의 성분은 이러했다. △작은 새장 하나를 잿물로 씻을 만한 양의 석회 △개구쟁이들이 장난감 대포를 한 번 쏠 정도의 포타슘(칼륨) △약봉지 한 개 정도의 마그네슘 △성냥개비 3천개 분량의 인(燐) △작은 못 한 개를 만들 만한 철분 △보통 중간 컵으로 한 컵 정도의 설탕 △세숫비누 5개 정도를 빚을 만한 지방 △기타 몇 가지 작은 물질 등이다. 한데 놀라운 건 이 화학적 물질을 값으로 치면 우리 돈 몇 천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일본 씨름선수 같은 거구라도 1만원을 넘지 못한다. 인간의 육신 값은 이토록 미미하다. 폭군 네로나 천재 아인슈타인, 살인마 유영철의 육신 값도 마찬가지 단돈 몇 천원에 그친다.
 
그럼 인간은 왜 위대한가. 그야 무게 1.3~1.4㎏에 불과한 두뇌가 결정한다. 두뇌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 천재와 바보, 성군과 폭군, 천사와 살인마의 인간 값은 하늘과 땅 차이로 벌어진다.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콘클라베 당시의 심경을 토로했다. “내 득표수가 많은 걸 알게 된 순간 마치 단두대가 내게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하느님께 기도했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보다 더 젊고 유능하며 열정적인 후배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게 진심이었고 명예욕과 노욕(老慾)을 그리 물리칠 수 있다면 그는 신의 영역에 한 발을 들여놓은 천사요 성인임에 무얼 더 의심하랴. 그런데 인간은 쭈그러진 1.3㎏짜리 두뇌로부터 좀처럼 욕심을 덜어내지 못한다. 바른 생각, 뛰어난 지혜, 올바른 판단, 똑바른 이성을 담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도무지 머리 용량이 모자라고 그릇이 안 된다 싶은 국가 지도자가 지구별엔 도처에 넘쳐나지 않는가. 이 찬란한 5월의 햇살을 저들의 1.3㎏ 무게 속속들이 환히 비춰 대오각성을 하도록 할 수는 없을까. /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