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반도는 위기인 모양이다. 우리 정부나 여야 정당 누구도 구체적으로 설명한 바 없으니 '그런 모양'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위기의 정보는 주로 외부에서 유입되고 있다. 밖에서 들리는 소리는 하나같이 끔직한 전망이요 비관적인 예측들이다. 북한의 핵실험 임박설을 보도하는 외신의 경고가 봇물을 이루더니, 급기야 미국 네오콘과 앙숙인 국제원자력기구(IAEA) 엘바라데이 사무총장도 북한이 이미 6개 정도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위기의 실체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급한 정상외교 행보에서도 감지된다. 나치의 침공을 몰아낸 러시아의 전승기념행사에 참석한 대통령의 관심은 온통 한반도에서의 미-북 충돌 위기 해소에 집중돼있으니 아이러니다. 북한을 6자회담의 우리에 몰아넣기 위해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따로 만나 협조를 간절히 요청했다. 다음달엔 미국과 일본을 연달아 방문할 예정이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안전보장이 그 목적일 것이다. 그런데 사태해결을 위한 전개과정은 예사롭지 않다. 미국과 일본이 무력사용을 포함한 다양한 대북 제재를 주장해 온 마당에 최근에는 중국까지 대북 압력수위를 높이고 있어서다. 6자 중 3강의 국제공조는 어떻게든 북한이 핵을 포기토록 하자는 것이니 러시아 또한 이같은 움직임에 역행하기 힘들것이다.
 
사실 미·일·중·러 4개국은 북한이 원시적인 핵무기 몇개를 보유한다해도 그들의 안보와는 무관하다. 북한이 핵무기 몇개로 이들과 전쟁을 할리 없을테니 그렇다. 문제는 북한의 핵무장에 한반도가 볼모로 잡힌다는 점이고 이는 동북아 전체의 긴장고조와 군비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있다. 동북아의 긴장이 자국 이익에 도움이 안된다는 판단에 따라 6자회담의 틀을 꾸린 것이다. 따라서 6자회담이 결렬된다면 이들로서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수단을 동원할 수 있는 입장이다. 즉 선택할 수단이 많다는 것이다. 북한 또한 핵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주도국이다. 그것이 핵무장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이라도 유효한 외교카드임에 분명하다.
 
우리 입장이 갑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북아 긴장해소를 위해 긴장을 불사하겠다는 미국과, 긴장을 통해 국익을 실현하려는 북한의 대치속에 노 대통령의 동북아균형자론은 그 수사의 화려함을 잃어가고 있다. 북에 대해서는 배신감을 토로하고 미·일·중·러에는 평화해결을 간청하는 입장에서 균형자의 당당함을 찾아보기 힘들다. '핵과 미사일은 외부의 위협으로 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억제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을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고 두둔한 LA에서의 여유는 온데 간데 없이 4강 정상외교에 숨차하는 대통령이 안쓰럽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일은 한치의 긴장감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풍경이다. 국민적 관심사였던 4·30 재·보선만 해도 그렇다. '우리의 위기'는 선거 쟁점이 아니었다. 선거는 그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의미있는 승전으로 치환됐을 뿐이다. 오죽했으면 청와대에서 자신들과 상관없는 선거였다고 했겠는가. 제역할을 포기한 야당이야 그렇다 치자. 열린우리당의 민족공조론자들은 이 시기에 왜 화려한 말솜씨를 아낀채 침묵하는가. 북에 대해 우리를, 노 대통령을 힘들게 하지 말라고 촉구하는 성명이라도 발표해야 하지 않는가. 당청분리 원칙에 따라 대통령이 해결해야 할 몫이라 판단한 것인지, 그도 아니면 북한의 위협을 단순한 '공갈'로 여겨 무시하는 것인지 도무지 모를 일이다.
 
더 이상의 침묵은 안된다. 국민이 현재의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도록 하고 위기해소를 위한 사회적 긴장을 유지하는 일은 정부 여당의 책임이다. 정부와 여당은 현재의 위기를 설명하고 위기해소를 위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위기가 오는지 가는지 모른 채 맞았던 시련의 역사가 셀 수 없는데도 변함없이 내부 갈등에 골몰하는 천진난만한 우리의 모습은 정말 부자연스럽다. /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