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수만 갈대밭이 불탔다. 폭죽도 터졌다. 새떼를 쫓기 위해서다. 아니, 이런 '야만'이! 가끔 새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경악했다. 녹색과 청정을 꿈꾸는 사람들도 놀랐다. 그러나, 매일 새를 보고 사는 사람들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다. 새보다 인간이 먼저 잖아! 뒤이어 화성 송산 사람들도 머리띠를 묶었다. 시화호 생태자연도 1등급이 웬말이냐! 푸른 5월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오래 된 레퍼토리다. 개발이냐, 보전이냐. 좀 지겹다. '보전파'들은 점잖게 나무란다. 이젠 그런 차원 낮은 이분법에서 벗어날 때도 됐잖아? '보전파'가 대세가 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딴동네' 보전이라면 모를까 '내 땅'이 걸리면 상황이 다르다. 우린 어떡하라고?! 우리만 손발 묶고 살라고? 죽기살기로 소리부터 내지르지 않을 수 없다. 어영부영 하다간 대세에 밀릴 테니까. 크게 보면, 수도권 규제 논란도 이 테두리 안에 있다.
사실, '생태자연도 1등급' 소동은 오해에서 비롯됐다. 환경부가 뜬금없이 들고 나온 새로운 규제가 아니다. '국토청정도'를 다시 파악하도록 한 법에 따랐을 뿐이다. 1등급이 된다고 아무 일도 못하는 것도 아니다. 절차가 까다로워질 따름이다. 당연한 일 아닌가? 국토를 몽땅 '자유개발경쟁'에 내맡길 수야 없는 노릇 아닌가?
하지만, '기업도시', '시화호 개발'에 그나마 기대를 걸었던 주민들에겐 날벼락이다. 이제야 살림 좀 피나 했더니, 또 묶는다고? 그렇겐 못 한다! 앞뒤 없이 불지르고 시위에 나선 건 분명 잘못이다. 하지만, 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지역이기주의'라고 일축할 수 있을까? '개발망령'에 들씌운 경거망동이라고 나무라도 괜찮은 걸까? 이들은 정녕 '1등급'이 좋은 줄 모르는 바보들일까?
답답하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현실을 뚫을 '녹색 상상력'이 절실하다.
환경부는 안이했다. 켜켜이 쌓인 오해와 불신의 두께를 제대로 가늠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에 '녹색 희망'과 '개발 욕망'이 얼마만큼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지 외면했다. 1등급 지정이 불러올 파장을 짐작조차 못한 게 틀림없다. 갈대밭 화재가 나고서야 허둥댔다. 뒤늦게 홈페이지에 해명을 올렸다. 왜 진작 1등급 주민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을까. '개발론자'들에게 둘러싸인 힘없는 부처라서? 그것은 국가의 '녹색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부처에게 어울리는 변명이 아니다.
하긴, 참여정부 자체가 녹색 상상력이 부족하다. 대세에 기대서 뭔가 한 건 하려는 움직임만 보인다. 행정수도 이전이 그렇고, 공기업 지방이전이 그렇고, 국토균형발전이 그렇다. 단 한건이라도 국민의 마음을 움직여 추진한 일이 있나. 반대 세력의 조직적인 저항을 핑계대기 전에 '녹색 비전'의 결여를 통감해야 하지 않을까.
해당 지방자치단체들도 마찬가지다. 개발, 개발, 발전, 발전만 외치지 않았나? '1등급'을 활용한 지역의 미래 청사진을 그려보기나 했나? '기업도시' '레저도시' 못지않은 '생태도시'의 꿈을 꿔 본 적은 있나? 눈 앞의 표 때문에 이런 상상력은 아예 원천봉쇄하지 않았나? 100년 후, 아니 한 세대 후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할까 생각이라도 한 번 해 보았나?
'1등급' 주민에게 일방적으로 희생을 강요하던 시대는 지났다. 가끔 머리 아플 때 찾아가 쉬기 위해 그들의 고향을 보전하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도 '녹색 상상력'이 있다고 먼저 인정해야 한다. 그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그리고 나서 그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들은 남이 아니다. '녹색 희망'과 '현실의 욕망' 사이에서 번민하는 '나' 자신이다. 개발이냐, 보전이야. 이 지겨운 우문을 던져버리는 지름길은 거기서부터 출발하지 않을까. /양훈도(논설위원)
녹색 상상력
입력 2005-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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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1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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