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에 가면 두 번 놀란다. 먼저 몽골 가구의 60%가 넘게 사는 전통가옥 게르(ger)에서 황당하면서도 은근히 놀란다. 게르는 원룸이다. 남쪽으로 난 문을 들어서면 가운데 두 기둥이 버티고 서 있을 뿐 부부 방, 아이 방, 노인 방이 따로 없고 칸막이 구조가 전혀 없다. 그렇다면 은밀한 부부 사랑 실천 공간은 어디서 확보해야 하는가. 하지만 이런 순진하고 때깔 고운 의문은 전혀 뜻밖의 10배, 100배는 더 순진무구하다 못해 수만 년 원시에 근접한 지독히도 자연스런 답변을 비켜낼 수 없다. 원룸의 “생긴 그대로 누릴 뿐”이라는 아주 태연스런 대답이기 때문이다. 주변을 의식하지 않는 초원의 말들, 양들의 행위와도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다음은 해발 1천600m의 고원 국가, 한반도 면적의 7배의 땅 중 80%가 넘는 광활한 초원의 밤하늘 아래 섰을 때 가슴 벅차 터지도록 놀란다. 북두칠성을 비롯해 오른쪽의 큰곰, 작은 곰, 기린과 왼쪽의 뱀, 알파카 등 숱한 별들이 저렇게도 커 보이고 유난히 반짝일 수 없다. 금세라도 이마에 쏟아질 것 같지 않은가. 초원의 가을, 청정하기 그지없는 공기 탓인가, 하늘이 그만큼 가까이 내려앉은 1천600m 고원 덕택인가. 달도 몽골의 달은 유달리 크고 밝다.
한국의 20분의 1에 불과한 인구, 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 평균수명 남자 64세, 여자 67세. 아직 개발 바람, 문명의 광풍이 미치지 못한 자연 환경은 너무나 청정하고 아름답고 인심 또한 어질고 후박(厚朴)하다. 그 몽골 고원, 드넓은 초원까지 우리의 한류(韓流)가 가파른 기세로 타고 오르다니! 국영방송의 ‘욘사마’ 주연 ‘호텔리어(hotelier)’ 방영을 신호로 같은 욘사마 주연의 ‘초련(初戀)’과 역사물 ‘장금이의 맹세’ 등 6편의 한국 드라마가 방영돼 무려 60%의 시청률까지 돌파했다. 민간방송도 ‘겨울 연가’ 등을 방영했고…. 고비사막 가까이 사는 어느 유목민의 6인 가족 중 3녀인 뱐반스렌 양(22)은 “한국 드라마는 스토리가 좋다. 그런데 때로는 마구 눈물이 난다”면서 한국 배우들의 사진을 게르의 벽에 도배하듯 붙였고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350㎞ 떨어진 하라호린이 집인 보로루아 양(16)은 “학교의 화제 중 으뜸은 한국 드라마”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국영방송의 바트체체그 드라마 제작부장도 “한국 드라마는 폭력과 성 묘사가 적어 좋다”고 거든다.
지구촌 어디에 흐르는 한류보다도 몽골의 한류가 반가운 까닭은 무엇인가. 그들은 우리와 같은 몽골로이드(Mongoloid) 인종 중에서도 가장 빼닮은 몽골리안 형제들이기 때문이다. 일본인과 중국인이 인종상 우리와 4촌간이라면 몽골인은 형제다. 엉덩이엔 몽골반점이 파랗고 눈엔 몽골주름(눈꺼풀 주름)을 달고 산다. 족두리를 비롯해 궁도 씨름 마술(馬術) 등 몽고풍(風)은 어떤가. 언어도 한국어와 같은 뿌리가 많다. 그래선가 한국인으로 착각해 한국말 붙이기가 십상인 몽골인, 그들은 한국인을 ‘솔롱고스(Solongos)’라고 부른다. ‘솔롱고’가 몽골어로 ‘무지개’니까 ‘솔롱고스’란 ‘무지개 나라 사람’이란 뜻이다. 이 얼마나 다정하고도 극진한 최상의 호칭인가. 그들은 그 옛날 고려 침공(1231년) 등을 까맣게 잊고 사는지도 모른다. 몽고에 충성한다는 뜻에서 고려 왕 이름을 충렬, 충선, 충숙, 충혜, 충정 등으로 짓고 왕자의 호칭도 ‘태자’가 아닌 ‘세자’로 부르게 했는가 하면 반드시 몽골 공주와 혼인케 했던 강국의 위세도 잊고 1274년엔 제주도를 전진기지로 왜국 공략에까지 나섰던 사실조차 망각의 시간 속에 던져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몽골의 ‘몽(Mon)’은 ‘용감한’ ‘골(gol)’은 ‘사람’을, 수도 ‘울란바토르’는 ‘빨간 영웅’을 뜻하듯이 그들은 빨간 영웅 칭기즈칸의 후예다. 몽골제국, ‘팍스 몽골리카’를 이룩한 민족이다. 그런 몽골의 광활한 초원에까지 흘러간 한류를 정복자 칭기즈칸이 살아와 지켜본다면 그 소감은 과연 어떨까. /吳東煥(논설위원)
아, 몽골 초원에도 韓流가…
입력 2005-06-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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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0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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