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인데요, 초등학교 6학년 아들놈에게 뒤통수를 얻어맞았습니다. 햇살 좋은 날 모처럼 부자가 공원을 찾았더랬습니다. 이런저런 말을 이어가던 끝에 화제가 컴퓨터 게임으로 옮아갔지요. 저야 뭐 '너무 게임에 넋놓지 말라'고 상투적인 잔소리를 늘어놓았지요. 그런데 이놈이 아비의 잔소리가 귀찮아서 말을 잘라먹을 심산이었는지 대뜸 “아빠 그런데 정부가 썩었어요” 그러더군요. 참 기도 안차서 “왜냐” 하니 대답이 시원합니다. “우리집 컴퓨터는 인터넷이 빵빵하게 터지는데 학교 컴퓨터는 인터넷 한번 접속하려면 친구들하고 한참 놀면서 기다려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는 인터넷을 클릭하고 지루하게 기다리던 중 컴퓨터 옆구리가 눈에 들어 온 모양입니다. 거기에 문제의 정부 조달 마크, 무궁화 문양에 정부라고 쓰여진 그 마크가 떡하니 붙어있더라 이겁니다.
아차 싶었지요. '아 초등학생 꼬마도 정부를 이렇게 가까이 체감하는구나' 하고 말이지요. 그리곤 곰곰이 생각을 키워보았더니 보통 문제가 아니더군요.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많은 아이들이 정부 조달 컴퓨터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정부의 '능력'을 판단할테니 말이지요. 속도가 미덕인 디지털 세상에서 학교의 먹통 컴퓨터는 아이들에겐 그 자체로 정부의 아이콘일 겁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체감할 또 다른 먹통 정부가 하나 둘이 아닐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이들 미래는 안중에 없는 공교육 현장, 지옥같은 입시부담, 바늘귀 같은 취업문, 적개심이 가득한 사회에 부딪힐 때 마다 이 아이들도 아비 세대와 마찬가지로 먹통 정부를 성토하는 비난쟁이들이 되지 않을까 무섭더군요. 아비 세대와 다름 없는 세대란 얼마나 무섭습니까.
요사이 이런저런 정책들이 표류하는 모양이 반복되자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습니다. 정부의 뒷배를 봐주어야 할 여당 부터가 아마추어들이 정부를 점거한 모양 난리입니다. 야당은 '그걸 이제 알았느냐'며 생뚱맞다는 반응입니다. 사실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이 문제입니다. 과거사 청산, 각종 국토균형발전 정책, 부동산투기 대책, 영세사업자 지원 정책 등은 그 자체로서는 우리 사회가 거부할 수 없는 과제들입니다. 문제는 그것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헛발질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데 있습니다.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을 비판하는 여론은 정책 선택의 잘못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공에 발을 맞추지 못하는 조기축구회 수준의 문전처리 행태 때문인 듯 합니다. 정말 계속 이러면 곤란합니다.
정부만 그런게 아닙니다.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도 프로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아마추어들입니다. 프로는 자신의 기량을 비용을 받고 파는 사람들입니다.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걸고 그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른 사람들일테지요.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 어떻습니까. 비용을 지불한 국민들을 우롱하는 사람들 아닙니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아직껏 개혁과 실용 사이에서 집안싸움이 극렬한데요, 아니 정권이 출범하고 총선에서 과반수 1당이 된지 언제입니까. 그런데도 지금까지 국정운영의 기본 전제를 놓고 갈등한다면 도대체 여당을 찍은 국민은 무엇을 위해 비용을 지불한 것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습니다. 한나라당이요? 제발 골프장에서 행패나 안부렸으면 좋겠습니다. 골프치고 행패부리라고 국민이 세비를 주는 건 아니잖습니까. 정치인들이 프로라면 철저히 팬들을 무시하는 플레이로 돈만 챙기는 철면피한들입니다. 그런데도 경기에선 악악 대기만 하니 관전할 염이 안나는 건 당연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프로로 자라기를 바랍니다. 각자의 분야에서 마음껏 기량을 뽐내는 프로들로 자라나 병든 세대를 대신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그 아이들 세대에서는 정부가 그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먹통이 아닌 세상이 돼야 할텐데요. 이런 아비의 바람을 아들 놈이 알아줄른지요. 방법 있습니까, 믿고 기다릴 밖에요. /윤인수〈논설위원〉
프로들의 세상을 꿈꾸며···
입력 2005-06-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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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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