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다. 중국의 한 현명한 왕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를 정리해 달라고 당시 석학들에게 특명을 내렸다. 장기간의 연구와 노력을 통해 12권의 책을 만들었는데 왕은 이것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읽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핵심만 정리해서 좀 더 간략하게 줄여보도록 하라”고 명했다. 석학들은 다시 내용을 정리해 “이것이 모든 지혜를 담은 한 권의 책입니다”라고 하며 올렸다. 그러나 왕은 세상엔 우민이 많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을 수가 있으니 더욱 줄여보라고 명했다.

 결국 줄이고 줄이다가 한 페이지로 정리한 후 다시 최종적인 한 문장이 완성됐다. 왕은 이 문장을 보고 매우 만족했다. 왕은 “후세 사람들이 이 문장의 지혜를 깨달으면 그들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 할 수 있겠구나”하면서 매우 기뻐했다고 한다. 그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였다.

 '2005 경기도세계도자비엔날레'가 58일간의 대장정을 마쳤다. 유명작가는 물론이고 젊은 작가의 작품이 실용성이나 예술적인 면에서나 상당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 도자의 수준이 이제는 세계가 공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특히 도공들의 노력으로 이천·광주·여주 주민은 물론 인근 수도권을 비롯 전국에서 모인 국민들의 도자에 대한 관심이 첫해와 두해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한다. 단적인 예가 도자기 값을 후려 깎으려들거나 어떻게 공짜 도자기 하나 얻어보나 하는 관람객이 많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는 도자의 세계를 이해하는 일반인이 늘어났다는 증거로서 도자발전의 근간이 되는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정작 행사의 주체로서 모처럼 형성된 분위기를 살려야 할 관(官)에서 재(?)를 뿌리는 일이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 들린다. 지역경제를 살리고 세계의 경기도자를 알리는 행사건만 관공서 주변인물들은 엉뚱한 행태를 보이기 일쑤였다는 것이다. 비엔날레 한 관계자가 들려준 뒷얘기는 씁쓸하기만 하다. 행사 홍보 등 성공적인 행사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지원을 아끼지 않아도 시원찮을 광역단체 고위간부들이 오히려 공짜도자기 상납을 요구하는가 하면 그것도 모자라 몇푼 되지도 않는 입장권까지 공짜로 요청하곤 하는 바람에 애를 먹었다고 한다. 그들 눈에는 가마 앞에서 혼을 불사르는 도예가들이 아직도 조선시대의 천한 도공들로밖에 보이지 않는 걸까. 이 비뚤어진 관존민비의 한심한 작태는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되려나.

 성공한 한 기업가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작은 선택들이 모여 배를 만들고 커다란 선택들이 방향을 잡아 성공의 항해를 떠난다. 우연히 생긴 배를 타고 놀면서 신세계의 발견을 기대한다면 차라리 복권을 사는 것이 확률이 높을 것이다. 하늘은 운명론자를 나쁜 운명으로 몰고 가는 이상한 힘이 있는 것 같다.” 공짜를 탐하는 관리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얘기다. 지금 한국도자는 성공의 항해를 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모두 힘을 합해 도예가들의 눈물과 땀을 씻어주며 격려해야 한다. 작은 다기 한 점 제값에 사주는 일이 바로 신세계를 향한 작은 선택들이다.

 도자의 역사는 매우 깊다. 우연의 역사가 아니다. 오랜 세월 도공의 불과 혼으로 빚어낸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한국도자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공짜도자기는 이제 막 새로운 발돋움을 시작한 한국도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암덩어리다. 그들이 가져가는 '공짜'는 한국도자 발전의 지체라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는 것이라는 걸 왜 모를까. 재능이나 공덕도 없이 녹만 축내는 관리를 일러 시위소찬(尸位素餐)이라고 한다던가. 이들이야말로 한국도자의 성공신화를 좀먹는 존재들이다. 다음 비엔날레를 열 때는 제발 이런 관료들이 자리에서 물러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논설위원 /윤인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