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판문점에 다녀왔다. 처음이다. 쉽지 않았다. 거의 한달 전에 인적사항을 넣고 기다렸다. 꼭 최일선을 봐야 분단을 실감하나? 그래도 가보고 싶었다. 몇 차례에 걸친 주민등록증 검사, 견학을 위한 교육, 인원과 소지품 점검…. 드디어 2열 종대로 정전회담장에 들어섰다. 영화에서 보았던 것보다는 좁아보였다.
테이블 한 복판을 가로지른다는 군사분계선. 그보다는 경비병들의 자세가 더 눈을 끈다. 차렷자세도 아니고, 기마자세도 아닌, 각도 잡힌 엉거주춤. 밀랍인형 같다. 유럽 관광지에서 보던 수비병과도 또 달랐다. 얼마나 힘들까. 몇교대 합니까. 군사기밀입니다. 인간을 지키기 위한 비인간적 자세. 판문점식 평화의 아이콘?
문제는 팔각정에서 터졌다. 팔각정에 오르시면 절대로 손짓을 하시면 안됩니다. 옛 자유의 집 자리에 세웠다는 팔각정에 오르기 전 안내사병은 다시한번 주의사항을 환기시켰다. 절대로? 그게 말처럼 쉬우랴. 저기가 북한 초소인가요? 자연스레 몇몇 팔이 올라갔다. 이야말로 자유대한식이다. 말로만 듣던 게 코앞에 있는데, 입만 움직여 물으라고? 그러나, 그걸로 견학은 끝이었다.
북한 관측병이 그 손짓을 수신호로 해석한다고 했다. 남북 간에 합의한 견학 규칙에도 손짓은 금지돼 있단다. 믿기 어려웠다. 설마, 가리키는 손짓을 북한을 그리워하는 신호로 해석할까. 그러나, 규칙이 그렇다는데 어쩔 것인가. 이른바 도끼사건이 일어났던 자리는 갈 수 없었다. '미친 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 규탄데모에 동원되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궁금했던 현장이다. 아쉬웠다.
유엔경비사 캠프로 되돌아가는 버스 운전병이 그랬다. 판문점 견학단은 70%가 외국인입니다. 그 사람들은 규칙을 잘 지킵니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아닙니다. 규칙을 위반해 놓고는 명함부터 들이밉니다. 나 이런 사람인데, 한 번 봐 줘라. 이런 얘기지요. 일동 썩소.
캠프엔 안보와 별 상관 없을듯한 물품을 파는 기념품점이 있었다. 분단 최일선까지 파고든 상혼이 놀랍다. 잘못하면 견학도중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무색하다. 아니다. 언뜻 스쳐지나가는 견학 외국인들의 표정은 어딘지 모르게 딱딱했다. 그들은 경고를 깊이 새겼을 것이다. 놀러 와서 비명횡사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대~한 민국'보다 더 자유로운 나라에서 온 그들. 그들에게 판문점은 그야말로 '전쟁이 잠시 멈춘 현장'일 터이다.
안내병은 미국서 살던 젊은이라 했다. 기특하다. 병역 빠지려 국적도 바꾸는 판에 분단 현장을 지키러왔다. 그런데, 궁금하다. 그는 한국인들의 손짓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몸짓 언어가 우리보다 훨씬 풍부한 문화에서 살다온 입장에서 '손짓 금지' 규칙이 납득될까. 군사기밀입니다. 그런 대답이 돌아올까봐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럴 것이다. 60년 분단의 몸짓, 손짓이 하루아침에 바뀌겠는가. 틈만 나면 상대를 향해 가운뎃손가락 펴 보이고, 감자떡 먹이던 세월 아니던가. 아직도 환영의 손짓조차 순수하게 해석하지 못하는 부류가 적지않은 마당 아닌가. 그러나, 정말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적어도 우리 민족 끼리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 판문점 팔각정에서 북쪽 초소를 향해 수고한다고 손을 흔들고, 마주 손인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통일은 부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러움으로 되돌리는 과정 아닌가.
“야, 야, 그림자 넘어와서, 야.” 판문점에 아직은 박찬욱식 유머가 없었다. 그건 해빙의 열망이 빚어낸 판타지였다. 손짓 하나도 빙점 이하로 얼어붙어 있는 곳. 내 다시는 판문점에 가지 않으리. 먼 훗날 아이들 손잡고 가서 손짓 때문에 쫓겨났던 얘기를 마음 편히 할 수 있는 날까지. 버스는 어느 새 임진각에 도착해 있었다./양 훈 도(논설위원)
판문점에서 생긴 일
입력 200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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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06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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