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르네상스운동은 이탈리아반도의 유서 깊은 상업도시 피렌체공화국의 메디치가(家)에서 비롯되었다. 메디치재벌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게된 것은 14세기말에 창업자 지오반니 디 비치 데 메디치가 메디치은행을 설립하면서부터였다. 메디치은행이 유럽 최대의 금융자본으로 성장하게 된 것은 교황청의 재정을 담당하면서부터였다. 돈으로 교황청을 주무르면서 자기편 인사를 교황에 추대하는 등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메디치재벌은 마지막 후계자 지안 가스토네가 1737년에 사망할 때까지 무려 3세기동안 생존하면서 막대한 부(富)를 배경으로 경쟁자들을 제압했을 뿐 아니라 권력을 이용하여 반(反)메디치정서를 잠재웠다. 심지어 조각가 도나텔로 등 유명한 미술가는 물론 지식인들까지 돈으로 매수하여 자기편으로 끌어들였다. 유럽 최대의 재벌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던 메디치가는 이번에는 직접 정치권력의 장악을 시도했다. 영국, 프랑스, 스페인 왕실과 혼맥(婚脈)으로 연결하고 정적(政敵)들을 돈으로 매수하거나 무자비하게 제거했다. 교황 클레멘스 7세(1478~1534)는 창업자 지오반니의 고손자이기도 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했던가. 가난이 싫어 돈벌이에 나섰던 피렌체의 평범한 상인 메디치는 끝내 유럽을 뒤흔드는 최고권력 중의 하나로 성장했던 것이다. 그러나 달도 차면 기우는 법, 메디치재벌의 과욕이 빚은 바벨탑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다.

 슈퍼재벌 삼성그룹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비록 이미 지난 일이나 사안의 중대성에 비추어볼 때 이 사건이 어떻게 마무리될지 잘 가늠되지 않는다. 그간 풍문으로만 떠돌던 재벌들의 정, 관, 언 커넥션이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삼성그룹은 창업이래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다. 삼성그룹이 “왜 나만 가지고 그래”하며 반발할 경우 이 문제는 재벌들 전체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치권의 새판 짜기 주장이 힘을 받을 가능성도 크다. 차제에 언론개혁요구도 한층 거세질 것이 분명하다. 왜 하필 이때 MBC가 사건을 터뜨렸는지 그 배경이나 동기도 자못 궁금하다.

 삼성공화국 시비가 불거진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최대의 재벌로 등장한 1950년대 중반이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삼성그룹은 끊임없이 국민적 비판을 받아왔다. 이 부분이 삼성이 불만스런 부분이다. 삼성은 창업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단한 기업활동을 통해 국부(國富)를 창출하고 고용을 확대했으며 최근에는 세계인들이 한국은 몰라도 ‘삼성’브랜드는 잘 알고 있을 정도로 국위선양에도 지대한 공헌을 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그룹 사람들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것 같은데 그것은 첫째, 한국경제의 삼성의존도가 심히 걱정될 정도로 삼성의 경제력 집중이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수출의 22%, 시가총액의 23%가 삼성의 몫이다. 둘째, 이건희 회장은 편법을 동원하여 외아들에게 경영권을 세습하고 삼성자동차 부실경영에 대한 손해배상금도 삼성생명의 주식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해서 해결했다. 그리고 무노조경영을 빌미로 노조를 야비하게 탄압하는 등 ‘국민기업’ 운운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셋째, 이번에 드러났듯이 삼성그룹은 풍부한 자금력과 중앙일보를 이용하여 국내 정치를 농단하려 들고 검찰, 관계, 언론, 학계, 심지어 시민단체에 까지 발을 뻗어 이들을 삼성장학생으로 포섭, 이제는 한국을 통째로 경영하려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 우리나라를 삼성공화국이랄 밖에. 삼성그룹은 점차 메디치재벌을 닮아가고 있다.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시간은 삼성편이 아니다. 삼성그룹은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고해성사하고 용서를 빌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당당한 세계초일류기업,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거듭날 것을 당부한다.
/ 이한구(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