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가 패륜 시비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문제의 장면은 지난달 27일 KBS 2TV 일일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전국의 안방극장에 노출됐다. 시어머니가 돌보던 어린 손자가 국그릇을 엎어 손에 가벼운 화상을 입었는데 병원에 쫓아온 젊은 며느리가 '애를 어떻게 봤냐'는 질타와 함께 시어머니의 뺨을 올려친 것이다. 더욱 가관은 아들조차 아내의 이같은 패륜행위를 나무라기는 커녕 어머니의 잘못을 탓하며 외면해 버리는 대목이다.

 제작진은 빗발치는 비난에 사태의 중대성을 인식하고 다급하게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하며 '표현의 수위조절에 무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실화에 바탕을 두고 제작했어도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이 감당하기에는 어려운 장면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작진의 의도는 '개탄스런 세태에도 무한한 부모의 자식사랑을 표현하는데 있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핵가족 시대의 가족붕괴 현상과 그 부작용을 가감없이 표현하고 싶었다는 제작진의 의도를 아무리 이해하고자 해도, 별다른 긴장없이 이를 목격해야 했던 시청자들은 제작진의 표현 자체를 문화적 테러로 여겼을 것이다. 시청자들이 격노한 것은 이 때문이다.

 초록은 동색인가. MBC에서는 며칠후 생방송인 '음악캠프' 출연자가 성기를 노출시키는 희대의 엽기적 광란을 그대로 공중파에 실어보내는 대형사고를 쳤다. 일부 출연자들이 빚은 순간적 일탈 행위라고는 하나 이들이 성기를 드러낸 채 무대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는 사태를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던 국민들이 느꼈을 수치감을 생각하면 이 또한 무책임한 대국민 방송 테러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출연자들은 단순히 분위기를 띄워달라는 부탁에 평소 클럽무대에서 보여주던 자유스런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사과가 아닐 수 없다.

 양 방송사는 사과와 관련자 고발, 재발방지 등 발빠른 조치와 함께 너그러운 시청자 관용을 구하고 있다. 방송위원회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듯 방송사에 너그럽던 과거의 태도와는 다르게 강력제재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공영방송인 양 방송사 사후 조치는 무언가 미지근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KBS드라마의 패륜장면이나 MBC의 성기노출 방송 사건은 어느정도 예고된 사고였다는 개연성 때문이다.

 드라마에 오락프로까지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패륜과 불륜, 선정성, 폭력성, 가학성 시비는 한 두해 묵은 사안이 아니다. 이런 비판이 있을 때 마다. 방송사와 방송위는 적절한 조치와 재발방지를 약속하고 또 약속했다. 그렇다면 이에 상응하는 대책이 진작에 세워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시청률 지상주의에 현혹된 지상파 방송들은 문제가 생기면 대충 덮어간다는 각오를 다진 듯 모든 프로그램을 시청률 확보를 위한 무한경쟁의 소모품으로 전락시켜왔다. 스스로 문화권력으로 자처하는 오만이 아니고서는 시청자를 이토록 무시하는 공영방송 시스템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두 사건은 이같은 비정상이 잉태한 열매인 셈이다.

 TV는 국민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 시청각 매체이다. 대중의 여가시간을 지배하는 TV가 제공하는 정보와 스토리, 영상은 대중의 사회적 의식과 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막대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에 비해, 방송사가 시청자와의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가. 대답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대중은 좋든 싫든 방송사가 공급하는 가공된 정보와 의도된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시청자에 대한 방송사의 무한책임과 도덕과 양심을 묻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지상파 방송들은 TV의 현실 영향력이 아무리 막대해도 그 사회의 포용 능력 한계 내에서 가능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윤인철〈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