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상 가장 위대한 시기는 언제일까. 두말 할 것도 없이 인류의 4대 성인으로 꼽히는 석가모니와 공자가 단 8년 차이로 탄생한 기원 전 560년과 552년으로부터 70~80년 사이일 것이다. 그 시기엔 공자가 예를 배웠다는 노자도 존재했고 공자가 숨지기 1년 전엔 머리에 먹물이 가장 많이 들었을 것 같은 ‘묵자(墨子)’도 공자와 같은 노나라에서 출생했다. 그리고 묵자가 죽은 지 각각 18년과 25년 뒤엔 유가(儒家)에서 공자 다음으로 위대해 ‘아성(亞聖)’이라 일컫는 맹자는 물론 장자도 태어났고 맹자가 죽기 9년 전엔 순자(荀子)까지 릴레이로 출생했다. 그런가하면 힌두교와 함께 인도의 대 종교인 자이나(Jaina)교 개조 마하비라(Mahavira)도 묵자와 같은 시기 사람이다. 그러니 그 시기야말로 얼마나 위대했던가.

 중국 최고의 철학자, 유가의 비조, 육경(六經)을 다듬고 ‘논어’를 지은 사람. 그러나 공자가 위대한 점 중에서 한 가지 간과하기 쉬운 게 있다. 전쟁을 벌인 국가들을 찾아다니며 국가간의 평화를 입술이 말라 터지도록 역설했다는 점이고 더욱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은 다름 아닌 황금률(黃金律)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는 점이다. ‘황금률(golden rule)’이란 ‘뜻이 심오해 인생에 유익한 잠언’이라는 본뜻도 있지만 쉽게 말해 ‘남이 네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을 너도 남에게 하지 말라’는 룰이다. 공자는 황금률을 들어 전쟁을 일으킨 또는 일으킬 나라들을 간곡히 설득했다. “남의 나라가 당신네 나라에 일으키지 말았으면 하는 전쟁을 왜 당신네 나라는 남의 나라에 일으키느냐”는 것이다. 묵자 또한 전쟁을 막기 위해 분투했다. 그는 전운(戰雲)이 감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공격 국가로 달려가 “제발 공격을 말아 달라”고 막았다. 놀라운 건 공자, 묵자보다 몇 백 년 뒤의 예수 또한 황금률을 역설했다는 사실이다. 그가 산상수훈(山上垂訓)에서 보인 기독교의 기본적 윤리관이 바로 ‘무엇이든지 남에게서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공자와 묵자가 입술이 부르트도록 외친 황금률도 무색하게 글자 그대로 ‘전국(戰國)시대’엔 숱한 전쟁이 벌어졌다. 미치광이 군주, 용렬한 군왕에 의해 끝없이 벌어지는 전쟁의 동기를 묵자는 한 마디로 탐욕이라고 질타했고 전쟁 도발자를 범죄자로 규정한 역사상 첫 인물이 바로 맹자였다. 전쟁뿐 아니라 내치(內治)도 다를 바 없다. 자신이 국민의 처지라면 원하지 않을 일을 군주는 백성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 백성의 선택권과는 전혀 무관한 존재인 절대적 군주는 백성의 뜻과는 180도 딴판인 전횡을 일삼기 일쑤였다. 맹자는 그 절대적 전횡자인 군주를 가리켜 말했다. “나라에서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며 사직(社稷)은 그 다음이고 맨 나중이 군주니라” 기원 전 300년대의 맹자, 그 얼마나 파격적인 안목의 선각자였던가. 그가 오늘에 살아온다면 미치광이 또는 용렬하기 그지없는 군주들을 향해, 그리고 그런 군주의 선택권까지 갖고 있는 복에 겨운 백성들을 향해 무엇이라 일갈할 것인가.

 답은 간단하다. 공자와 묵자, 예수의 황금률 존중과 지키기다. 자기 나라 같으면 원하지 않을 것을 다른 나라에게 하지 말아야 하고 국가 지도자는 자신이 국민의 처지라면 바라지 않을 일을 국민에게 강요하지 않아야 한다. 당나라의 명재상 송경(宋璟)도 예수를 알고 성경을 읽었던가. 그는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밀어 갈등을 피하라”고 했다. 모욕은 명예훼손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가 명심해야 할 바 또 하나는 바로 그거다. 국가 지도자가 다른 나라 지도자로부터 당하는 모욕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송경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가 지도자에게 한 줌 자존심이 있다면 무엇보다 나라의 안전과 국민의 생존권에 걸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엔 누가 있어 남과 북 지도자에게 해서는 안 될 일 황금률부터 가르칠 수 있으랴./吳東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