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무한 책임
입력 200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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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내일로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한다. 여기 저기에서 임기 절반을 보낸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가 쏟아지고, 나머지 임기 절반을 이렇게 저렇게 채워달라는 주문이 쇄도한다. 그런데 대통령의 임기에 반환점이 따로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대통령의 임기 반환 시점은 차기 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2008년 2월의 일이다. '반환점'의 의미가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의미라면 더더욱 부정확한 표현이다. 2003년 2월 25일 제 16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바로 그 순간, 노 대통령은 다시는 출발점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장정에 돌입했으니 그렇다.
'반환점'이라는 용어에 시비를 거는 이유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의 결과는 결코 되물릴 수도 되돌릴수도 없는 것임을 강조하려는 뜻에서다. 노 대통령이 외로운 건 결코 대통령이 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이다. 물러나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지금껏 여론의 도마에 올라있다.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임기중 자행된 정보기관의 도청행위로 곤경에 처했다. 국민과 역사앞에서 짊어져야 할 무한책임은 대통령된 사람의 숙명이다. 국민은 지난 2년 반의 통치행위의 결과로 현재의 노 대통령을 평가하고 있고, 향후 2년 반의 통치행위 결과에 따라 또 다른 평가를 내릴 것이다. 노 대통령에게 임기 절반의 의미는 이와 같을 뿐이다.
따라서 노 대통령에게는 지나온 절반의 임기보다는 앞으로 남은 절반의 임기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나머지 절반의 임기를 통해 그는 자신의 통치행위를 완결지어야 할테고 그 결과로 국가와 국민이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지나온 절반의 임기를 반추하고 자성하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의 실정과 실책을 거울 삼아 나머지 임기를 채울수 있는 생산적 추진력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대통령이 말하기 보다는 듣기에 신경써야 한다. 그동안 대통령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말을 쏟아냈다. 그 많은 말들이 대부분 피아를 구분하고 전선을 형성하는데 쓰였다. 개혁 대 수구, 강남 대 비강남, 수도권 대 비수도권, 비양심적 부유층 대 희생적 빈민층 등등…. 이런식의 계층 대립적, 지역 대칭적 수사로 나라 전체가 편이 갈려 혼란에 질식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야당은 수구꼴통 집단이자 친일과 군정의 사악한 후예로 전락했고, 강남과 수도권은 기득권 향유 지역으로 매도됐다. 문제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문제해결의 방식이다. 국민의 절반을 사악한 편에 몰아넣고 비양심적 기득권으로 묶어놓으니 필연코 싸움이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친일청산을 포함한 과거사 정리, 국보법 개폐, 행정수도 건설, 공공기관 이전, 부동산 문제 등 참여정부의 핵심 국정과제들 대부분이 지지부진하거나 축소집행되거나 실행여부를 의심받거나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대통령은 임기초 호랑이 처럼 보고 소 처럼 걷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의 개혁을 강조했지만, 호랑이의 포효만 있었지 상대를 설득하고 기다려주는 우행은 부족했지 싶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진정을 폄하하고 외면하는 야당과 반대여론에 대해서는 그 서운한 감정을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대통령직을 걸고 개혁의 순결성 진정성을 호소하고, 밤잠을 잊은 채 국민에게 당원에게 편지를 쓴 적이 여러번이다. 대연정 제안 방식이나 관철 방안도 이와 한치도 다르지 않으니 걱정이다.
참여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길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을 위해서가 아니다. 국가의 격을 새로 세우고 국민의 삶의 지평이 새로워지기를 염원해서다. 개혁은 한나라당이 집권했어도 외면할 수 없었던 시대적 요청이다. 노 대통령은 원없이 싸운 대통령이 아니라, 개혁의 초석을 놓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절반이나 남은 임기가 대통령의 통합적 리더십으로 채워지길 바란다./윤인수〈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