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삼성컴퓨터로 e메일을 확인하고 삼성에서 만든 휴대전화로 통화를 하며 삼성생명에 보험을 들고, 주말이면 삼성이 소유한 에버랜드에서 여가를 보낸다.” LA타임스가 25일자로 보도한 '삼성공화국이 반격을 받고 있다'는 서울발 기사중 일부이다. 전근대적인 재벌과 첨단 글로벌 기업의 이미지가 혼재된 삼성에 대한 한국인의 애증은 외국 저널리스트에게도 기괴한 장면이었던 모양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삼성의 재벌 근성 타도를 외치는 가운데 국민의 일상 생활은 삼성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모순을 설명하기에 삼성만한 기표도 없으니 과연 특파원의 눈썰미답다.
자본의 사회지배를 합법적으로 보장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거대자본의 영향력은 막강할 수 밖에 없다. LA타임스는 삼성공화국을 언급했지만 일본에선 도요타 공화국이, 미국에선 마이크로소프트 공화국이 대중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LA타임스가 거론한 삼성식 라이프스타일을 제대로 완성시켜 보자. 삼성의료원에서 태어나 40평대 래미안에 살면서 매직스테이션이나 센스로 정보화 시대를 구가하고 애니콜로 통화하며 삼성생명에 보험을 들고 에버랜드에서 주말을 보내다가 노후를 노블카운티에서 보낸 뒤 삼성의료원에서 수많은 문상객들의 재배를 받는 인생! 삼성 라이프 스타일은 한국인이라면 대다수가 도전해서 성취하고 싶은 열망의 대상일 것이다. 이런 삶을 천박하다고 욕할 지식인이 있을지 몰라도 대중들이 이런 삶을 열망하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자본이 대중의 현실 뿐 아니라 대중의 환상까지 지배하려는데 있다. 기업은 직접적인 재화로 대중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대중의 욕구와 환상을 자기 것으로 하는데 더 많은 비용을 치른다. 기업과 대중 사이에서 욕구와 환상을 매개하는 집단이 바로 방송·신문·잡지와 같은 대중매체이다. 대중매체의 광고는 대중의 욕구를 끊임없이 분발시켜 기업에 거대한 소비집단을 제공한다. 그래서 광고는 산업이자 시장이다. 대중매체는 당연히 주 수입원인 광고시장의 확장과 점유를 위해 경쟁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방송사의 간접광고 허용도 이와 관련된 문제이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대 방송사는 문화관광부에 간접광고를 비롯해 가상광고 중간광고등 새로운 광고기법의 도입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광고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위성방송, 케이블 방송, 온라인 신문 등 광고시장을 분점할 새로운 매체가 속속 등장하자 방송 광고 시장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중 논란의 핵심인 간접광고(PPL:Product Placement)는 특정사의 특정상품을 드라마를 비롯한 각종 프로그램에 배치하는 광고기법을 말한다. 최근 들어서는 상품 뿐 아니라 특정사의 브랜드를 배치하는 BPL(Brand Placement)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문광부 방송광고제도 개선 태스크포스팀이 방송사의 요구를 수용할 모양이다. 방송사의 경영이 힘들다는 것은 알려진 그대로다. 수신료를 경영기반으로 하는 KBS는 수백억원의 적자를 냈고 다른 두 방송사도 예전의 호황기를 그리워하는 실정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방송 프로그램을 상품 광고로 도배하는 일을 허용한다는 것은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인식하지 못한 발상이다. SBS 드라마 '루루공주'의 주인공 김정은은 도저히 현실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하는 고통에 눈물을 흘렸다. 간접광고가 금지된 지금도 '루루공주'를 '비데공주'로 타락하는 마당이다. 간접광고가 허용된다면 대중은 무의식의 세계에서도 삼성을 비롯한 기업이 제공하는 라이프스타일에 중독될 수 밖에 없다.
참여정부가 방송을 의도적으로 키울 작정이 아니라면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2공영 1민영 체제의 지상파 방송을 거대자본의 광고매체로 전락시키고서야 공영방송의 설립 의미를 어디서 찾겠으며 민영방송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강조할 수 있겠는가. '비데공주' 김정은의 눈물을 예사롭게 여길 일이 아니다./윤인수〈논설위원〉
간접광고와 '비데공주'의 눈물
입력 2005-09-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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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7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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