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세계는 다시 혁신에 주목하고 있다. 세금 먹는 하마인 우정(郵政) 민영화 및 정부계 금융기관들을 통폐합하고 공무원수를 지금보다 10% 줄여 향후 10년 내에 공무원의 총인건비가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현재의 절반수준으로 억제, 반드시 작은 정부를 실현하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결과일 것이다.
혁신(innovation)이란 무엇인가. 일찍이 슘페터(J. Schumpeter)는 자본주의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혁신을 강조했다. 혁신의 구체적 사례로 새로운 상품의 개발, 새로운 시장개척, 새로운 생산방법의 도입, 새로운 반제품 획득, 새로운 경영관리조직의 개발 등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선행조건으로서 혁신자(entrepreneur)들은 우선 혁신에 대한 확신과 사고의 전환이 요구된다. 그래서 슘페터는 혁신행동을 '창조적 파괴행위'로 규정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케인지언(Keynesian)들의 그늘에 가려 주목받지 못하다가 지구촌(Globalisation)시대를 맞아 화려하게 부활했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효율성이 최우선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실패(government failure)를 절감했던 선진국 정부들은 앞다투어 정부조직을 슬림화하고 ‘선택과 집중’식의 작은 정부를 지향했다. 자본주의사회 특유의 역동성을 제고하기 위해 능력있는 자들이 열심히 일에 매진할 수 있도록 감세정책도 병행했다.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수상은 늙은 대륙 유럽에 새로운 희망을 주었으며 잭 웰치는 죽어가는 공룡기업 GE를 살려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설파했다. 비록 지금의 부시정부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기습으로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고 있으나 작은 정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참여정부도 이 대열에 동참, 정부이름도 ‘혁신정부’로 명명했다. 만시지탄이나 올바른 선택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며 혁신자역할을 자임했다. CEO형 대통령이 된 것이다. 현 정부는 집권 첫해부터 전자정부(e-government)사업을 추진했으며 공직사회에 능률성, 자율성을 담보로 한 성과관리제를 도입하고 직급파괴작업도 병행했다. 민간인들의 공직사회 진출기회를 확대, 진입장벽도 낮추었다. 업무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 복수차관제를 도입했으며 대통령직속의 혁신담당비서관직도 신설했다.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공무원퇴출기준도 마련했다. 바야흐로 관가는 1960년대 새마을운동이 시작될 때처럼 온통 혁신타령이다.
조직이 클수록 혁신작업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는데 하물며 ‘철밥통’인 우리네 공직사회의 혁신성과를 벌써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이다. 그러나 혁신에는 첫 단추를 끼우는 작업이 중요한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현 정부의 공무원수는 과거정부에 비해 무려 2만명이나 늘어 역대최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장·차관수도 148명으로 건국이래 가장 많다. 대통령 및 국무총리 직속의 각종 위원회수도 현 정부 들어 무려 32개나 신설되었다. 가히 위원회공화국이다. 더구나 정부의 요란한 구호와는 달리 일선 하부조직의 복지부동도 여전, 일단 소나기만 피하고 보자는 경향이 농후하다. 국가채무도 꾸준히 늘어 올해만 나라 빚이 43조원이나 새로 늘어났다. 당연히 국민들의 세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에만 1인당 조세부담액이 올해보다 23만원 가량 더 늘어날 전망이다.
외형적인 모양만 볼 때 참여정부는 혁신정부와는 분명 거리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조직이 클수록 행정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고 국민들의 조세부담이 클수록 자본주의사회 특유의 역동성은 감소된다. '몸 따로, 머리 따로'인 무늬만 혁신정부가 되는 것은 아닌지 회의가 든다.
/이 한 구(수원대교수·객원논설위원)
혁신정부의 이상과 현실
입력 200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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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0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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