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선거에서 완해한 여권의 내부투쟁이 자못 살벌하다. 올 봄 4.30 재·보선에 이어 이번 재선거에서도 열린우리당은 당 공천 후보 중 단 한명도 건지지 못했다. 이처럼 지독한 민심 이반 현상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일이니 말과 행동에 체면을 가릴 겨를이 없는 모양이다. 책임론의 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서 있으니 더욱 그렇다.
여권의 내부 투쟁을 살펴보면 오래 묵은 갈등의 뿌리가 드러난다. “대통령이 신(神)이냐”는 문학진 의원의 일갈이 이를 증명한다. 한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구사하기에는 대단히 부적절한 수사이자 누가 들어도 막말이다. 더욱이 노 대통령은 권위의 해체를 강조해 온 사람 아닌가. 웃통을 벗어던지고 검사들과 설전을 벌이고 직접 국민에게 밤새워 편지를 쓰는 대통령이다. 오히려 대통령의 위엄을 요구하는 여론이 적지 않은 마당이다. 문 의원이 이를 모를리 없다. 그렇다면 그의 일갈은 무의식의 발로라기 보다는 전후 맥락을 따져서 살펴야 한다. 그가 “대통령이 신이냐”고 대들기에 이른데는 그동안 켜켜이 쌓여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소외와 좌절, 체념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열린우리당 의원들 대부분이 17대 총선에서 대통령 탄핵 역풍에 편승해 당선된 사람들이다. 대통령에게 정치적인 채무를 안고 정치를 시작한 셈이다. 채무자가 당당할 수 없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자신들이 날마다 접하는 민심을 애써 외면한 채 동의 여부를 떠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에 맞추어 행군에 행군을 거듭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의제를 선취하고 명분을 장악하는 대통령의 탁월한 능력은 야당의 비판 뿐 아니라 여당 내부의 이견도 잠재우기에 충분했다. 그러니 돌아선 민심과 대통령의 개혁행보 사이에서 겪었을 심적 스트레스는 대단했을테고 그렇게 쌓이고 쌓인 정치적 스트레스가 “대통령이 신이냐”는 말로 폭발했을 것이다.
결국 여권의 장래는 민생파와 친노개혁파의 주도권 싸움의 결과로 결정될 듯 싶다. 그동안 쌓아두었던 흉중의 원성을 쏟아 낸 민생파는 기왕에 엎질러진 물이니 차기 대선주자를 앞세워 용맹을 부릴 것이고, 친노 진영은 이들을 견제하는 한편 정국 전반을 장악할 궁리에 골몰할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여권의 내부 투쟁이 10.26 재선거를 통해 드러난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는 행위라는 점이다. 국민이 올해 두차례의 재·보선에서 정부와 여당에 던진 메시지는 간단명료하다. 개혁도 좋지만 청년 실업을 해소하고 서민가계를 일으켜세우고 김치라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도록 민생을 챙겨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작금의 정국은 몹시 기괴하다. 한나라당은 '재·보선 전문당'이라는 낙인을 찜찜해하며 구석에 물러앉아 선거의 손익이나 따져보고 있으니 한심한 일이다. 그 사이 여권은 내부 노선 투쟁이라는 정치적 의제를 생산해 모든 대중매체들의 관심을 끌며 여전히 정국을 주도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으니, 이것이 재·보선 참패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한 정치 이벤트라면 정말 천부의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여권이 바닥을 기는 지지율을 만회하고자 국민의 관심을 끌수 있는 당 안팎의 모든 갈등을 내보이는 방식으로 정국을 운영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여론도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각설하고 여권은 내부 투쟁을 즉각 멈추어야 한다. 그들이 몸을 담고 있는 곳은 집권여당이고 청와대이고 정부이다. 모두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을 해야 할 곳이지 노선 투쟁을 벌이고 감정적 인신공방을 펼칠 곳이 아니다. 자기들끼리 소통하지 못하면서 국민과 소통하겠다면 말이 안된다.
/尹寅壽〈논설위원〉
"대통령이 신(神)이냐"
입력 2005-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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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0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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