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연금 때문에 흔들리고 있다. 진원지는 자동차산업이다. GM(제너럴 모터스)은 1999년 델파이를 분사하면서 2007년 이전에 델파이가 파산할 경우 이 회사 퇴직자들의 의료 및 연금불입을 떠안기로 했는데 최근 델파이가 경영난에 직면하면서 GM의 주가가 곤두박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드와 다임러 크라이슬러도 같은 상황에 직면, 자동차제국의 몰락을 예고하고 있다. 이뿐 아니다. 고유가로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유나이티드항공이 근로자에 대한 기업연금 보험료 납부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비슷한 처지의 기업들이 동조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부시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복지천국인 유럽에서도 연금문제는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지난달 독일 사민당은 연금혜택을 줄이는 내용을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다가 텃밭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州)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에서 유럽연합(EU) 헌법이 부결된 것도 연금 개혁 등 복지축소정책을 추진한 정부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연금수령액이 퇴직 전 임금의 90%를 상회하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에서는 조기퇴직하려는 사람들이 쇄도하는 등 도덕적 해이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제성장률은 눈에 띄게 둔화하는 반면에 고령자수가 급증, 연금재원이 바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민연금은 탈도 많고 말도 많다. 재원의 조기고갈을 우려한 정부가 연금급여액을 삭감하려 하니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또한 여타 연금들과의 형평성시비도 잦아지고 있다. 새로 손질한 기업연금도 노사 양측 모두가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에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특수직역연금도 손을 볼 모양이다.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은 틈날 때마다 특수직역연금의 수술을 운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단체 및 진보진영의 전사(戰士)들이 특수연금은 국민연금에 비해 혜택이 상대적으로 매우 클 뿐 아니라 해마다 막대한 국민혈세를 쏟아부어 보전해 주는 등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로 하여금 특수연금과의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주지하는 바처럼 공무원, 군인, 교직원 등은 우리나라 중산층의 중심이자 대표적인 철밥통들이다. 벌써부터 전운(戰雲)이 감지되는 등 또 한차례의 폭풍이 몰아칠지 걱정이 앞선다.

 그간 참여정부는 개혁의 기치 하에 끊임없이 기득권층과의 전쟁을 감행했다. 투기와의 전쟁을 구실로 부동산부자들에 융단폭격을 감행했고 성매매금지법의 제정을 통해 남성들의 바람끼를 강제로 잠재웠으며 기업들에게는 접대비실명제와 외국인고용허가제의 실시를 통해 투명경영을 강요했다. 삼성과의 일전은 목하 진행형이다. 또한 기회의 평등을 내세워 명문대학들의 하향평준화를 유도했으며 공공기관의 지방이전과 행정도시 건설로 수도권 죽이기도 병행했다. 엘리트중심의 기존 관료조직도 흔들어댔다. 그 대가로 노무현 대통령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집권여당에 대한 지지도 또한 역대 최하위를 기록하는 등 참여정부 투사들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의 투쟁의지는 조금도 사그러들지 않는 듯 보인다. 지칠 줄 모르는 그들의 투쟁의지가 가상하기만 하다.

 미래가 지극히 불투명한 지구촌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연금은 마지막으로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다. 더구나 우리 국민들은 지난번 외환위기 때 사회안전망의 필요성을 절감한 바 있다. 필요하다면 연금개혁도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보다 경제력이 월등한 선진국에서도 고양이목에 방울을 다는 작업을 망설이고 있다. 하물며 집권후반기에 들어선 참여정부가 철밥통들의 마지막 보루인 특수연금과의 전쟁을 어떻게 치를 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