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죽는다. 탄생 순간 운명의 시계는 이미 죽음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한다. 냉혹한 시간 사슬에 굴비처럼 엮인 채 스크럼을 짜고 죽음의 피안을 향해 일제히 행진하고 있는 게 우리 인간이다. 그런데도 모두들 죽음을 잊고 산다. 가족과 이웃, 절친한 친구와 친지, 존경하는 이의 죽음으로 일시 오열에 무너져도, 그래서 잠시나마 이마까지 찬 허무의 늪에 잠긴 채 무상(無常)의 눈금을 논하면서도 돌아서 하룻밤만 자고 나면 또 까맣게 망각한다. ‘80년, 90년 AS’의 염라대왕 보증서를 받은 바도 없거늘 자신의 죽음만은 까마득한 훗날 일로만 여기기 때문인가.
죽음=영원한 종장(終章), 다시없는 끝이다. 영어에선 왜 하필이면 총인지는 몰라도 방아쇠 자물쇠(lock)도 개머리판(stock)도 총신(barrel)도 ‘깡그리’ 두고 떠나는 게 죽음이다. 사자(死者)의 유일한 패션인 수의엔 아무리 뜯어봐도 주머니 하나 없다. 동전 한 개 달랑 넣을 데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처절한 진리를 잊고 욕심을 불태운다. 죽어 태워지면 한 줌의 재로, 땅에 묻히면 한 움큼의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런데 숨이 멎어 하루만 지나면 생선처럼 부패한다는 건 차마 알려 하질 않는다. 땅에 묻히면 벌레의 공격(충렴→蟲廉)을 받고 뚫고 들어온 나무뿌리에 휘감겨(목렴→木廉) 묶이고 스며든 물에 잠기는(수렴→水廉) 등 무참히 당하는데도 그렇다. 납골당 골분 단지도 영락없이 개미떼 등 벌레가 우글거린다.
언제 자신이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1985년 3월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은 언론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자신은 죽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코를 갖고 있다고 했지만 그 역시 사년월일(死年月日) 순위가 적힌 염라대왕의 호출수첩이라도 들여다본 건 아닐 것이다. 만약에 단 한 달과 1주일, 단 하루 앞의 죽음이라도 예견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 시간의 삶은 일생 중 가장 엄숙하고 겸허하고 성실하고 착하게 될 것이다. 논어 말씀에 ‘사람이 장차 죽으려 하면 그 말씀이 착해진다(人之將死其言也善)’고 했던가. 말뿐 아니라 행작(行作)도 착해진다. 누가 감히 내일의 죽음을 앞두고 불선(不善)을 저지르고 상대의 멱살을 잡을 것인가. 내일 종말이 온다 해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지언정 그걸 뽑아버리거나 남의 사과나무까지 베어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세기말 유럽에서 죽음 관련 영화와 저술이 쏟아지고 죽음을 소재로 한 사진전이 유행했던 것도 다 뜻과 이유가 있었고 일찍이 ‘죽음학(thanatology)’이 학문의 대열에 낀 까닭도 죽음 이쪽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자는 뜻일 것이다.
한데 주목할 것은 미국 세인트루이스 대학의 ‘죽음학’ 강좌처럼 78년 서강대에도 ‘죽음학’이 등단했던 점이고 지난 9월엔 한국죽음학회가 출범했다는 것, 그리고 지난 9월 연세대 예배당의 ‘잘 죽는 법’ 세미나에도 인파가 넘쳤다는 사실이다. 어어! 총리실 간부들도 지난해 유서를 쓰고 관에 누워 보는 등 죽음 연수를 했다지 않은가. 바로 그거다. 대학 필수교양과목으로 ‘죽음학상론(詳論)’까지는 몰라도 ‘죽음학개론’이라도 가르치자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상위 공직자부터 ‘1일 사망 체험대회’ 등 죽음 체험 연수과정을 상례화하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죽음이 언제 덮칠지 모르고 삶이란 어처구니없이 짧고 허무하다는 걸 느낀다면 조금이라도 정직하고 착하게 달라질 게 아닌가. 그러면 ‘서울’이 수도를 뜻하는 말인데도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을 인정할 수 없다와 있다, 사실상의 수도분할이다 아니다로 최고재판관의 판결이 갈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차마 눈 뜨고 귀 열어 보고 듣기 민망한 대통령 찬송가의 ‘갈색 코(brown nose→아첨꾼) 합창단’은 입을 닫고 있을 게 아닌가. 특히 눈 하나 깜짝 않고 두꺼비를 먹는 여자(toadeater→아첨배)라니! 그리고 금세 밝혀질 검찰 사안인데도 “돈 받은 일 없다” “도청 사실 없다” 잡아떼며 명예 자살을 자행하는 얼굴들도, 비열한 난자 고자질 등도 혹여나 줄어들지 않을까.
/吳東煥(논설위원)
‘죽음학개론’을 가르치자
입력 2005-11-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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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3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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