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성큼 다가오면서 초, 중, 고교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학교가 춥다고 호소했다. 어린 자녀들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에 시달리는 것만 해도 안쓰러운데 추위 때문에 2중의 고통을 받아야만 했으니 학부모들의 불만도 비등했다. 원인은 학교측의 과도한 전기료 부담 때문이었다. 학교운영비에서 에너지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확대되자 각급 학교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부당국에 교육용 전기료 인하를 하소연했으나 유야무야 넘겨왔다. 그런데 올해는 예년보다 일찍 추위가 닥치면서 이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했다. 내수부진으로 코너에 몰린 정부와 여당입장에서는 더 이상 외면하기 어려웠다. 설상가상으로 지방선거도 코앞으로 다가왔다. 차제에 정부와 여당은 전격적으로 교육용 전기료를 16.2%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만시지탄이나 다행스러웠다. 그러나 이로 인해 새로운 문제가 불거질 개연성이 높다. 한국전력은 이번에 교육용 전력요금을 크게 낮추는 대신 산업용과 가로등 전력요금을 각각 2.8%와 2.5%씩 인상했다. 동시에 주택용과 일반용 전력요금도 각각 1.8%와 1.9%씩 인상했다. 인상이유는 잘 확인되지 않으나 고유가에 대비, 에너지절약차원의 명분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론은 학교의 난방비 부담이 기업과 가계로 전가되었는데 이것이 문제이다. 내수부진으로 가계소득이 4년째 제자리걸음중인 상황에서 교실의 추위가 서민들 가정으로 옮겨갈 것이 자명하다. 또한 기업들은 가뜩이나 고유가로 고통을 받고 있는 터에 산업용과 일반용 전력요금까지 한꺼번에 인상됨으로써 국산품의 수출경쟁력 하락은 물론 내년도 공공요금 인상과 물가불안은 불문가지이다.

 반면에 이번 전력요금 조정으로 한전은 아무런 공도 들이지 않고 막대한 어부지리를 얻었다. 필자가 작년도 한전의 종별 매출액을 기준으로 이번 전력요금조정에 따른 매출액 증감을 추정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교육용 전기료 16.2% 인하로 내년도 한전의 매출액은 544억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한전은 산업용 2.8%인상으로 2,803억원을, 가로등 2.5% 인상으로 386억원을, 주택용 1.8% 인상으로 1,072억원을, 그리고 일반용 1.9% 인상으로 1,241억원 등 총 5,502억원의 매출액 증가가 예상된다. 각 종별 요금인상으로 인한 매출액 증가분(5,502억원)에서 교육용 전기료 인하로 인한 매출액 감소분(544억원)을 차감하면 한전은 이번 요금조정으로 내년에만 총 4,958억원의 수입증가가 예상된다. 한전은 어린 학생들의 교육여건 개선을 빌미로 자기 잇속만 차렸던 것이다. 명색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공기업이 이런 식으로 장사를 해도 되는지 어이가 없다.

 한전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매출액 증가를 도모할 만큼 경영이 어려운가 하는 의문이 든다. 결론은 “아니오”이다. 한전은 지난해에만 당기순이익으로 2조8천800억원을 벌어들여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LG필립스LCD, SK텔레콤 다음으로 높은 수익을 올렸을 뿐 아니라 올해는 9월 현재 총 2조5천873억원을 기록하는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초우량기업이다. 어설픈 성과급기준을 최대한 이용하여 임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엄청난 이윤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전은 전기료 과다징수, 불공정거래, 낙하산인사, 방만경영 등의 표적으로 국정감사 때마다 선량들의 몰매를 맞곤 했다. 한전은 고질적인 방만경영만 시정해도 교육용 전기료 인하로 인한 매출액 감소분(544억원)쯤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에 대한 전력공급 대비 등 한전의 입장은 이해한다. 그러나 온 국민이 허리띠를 더욱 졸라매는 상황에서 고통분담은 커녕 이런 식으로 매출액 증가를 도모해야만 했나. 구태의연한 경영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고통분담차원에서라도 한전의 환골탈태를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