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이따금 멈춰선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달려온 방향을 우두커니 쳐다본다. 쉬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너무 빨리 달리는 바람에 미처 뒤따라오지 못한 영혼을 기다리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실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생각의 속도로 살지 못해 안달하는 현대인에게 이보다 쉽고 정곡을 찌르는 예화가 있을까. 고속철도처럼 달려온 한 해 끄트머리다.
한 과학자가 숨가쁘게 질주했다. 영혼이 뒤따라올 시간이 없었다. “3개면 어떻고, 1개면 어떻습니까. 또 1년이 늦어진들 어떻습니까.” 아쉽게도 그의 고백은 너무 늦었다. 그는 진작 멈춰섰어야 했다. 욕심을 다스리며 영혼이 함께 갈 시간을 벌었어야 했다. 대중은 그의 속도에 열광했다. 내달리는 선두를 좇아 미친 듯 달리는 들소떼처럼 그 뒤를 따랐다. 질주의 종착점에서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쓰디쓴 환멸이다. 우리는 너무 비싼 대가를 치렀다. 괴로운 연말이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달력조차 바꾸었다. 1년 365일을 30일 단위 12개월로 나누었다. 자연의 시간을 이성의 달력으로 규율하려는 시도였다. 30×12를 하면 360이 되고 닷새가 남는다. 혁명정부는 이 남는 5일을 축제의 기간으로 선포했다. 이들의 규정에 의하면 닷새는 달력에 없는 시간이다. 혁명력의 발상을 적용하면, 12월27일부터 31일까지는 '존재하지 않는 날들'이다. (물론, 혁명력은 9월22일을 1월(방데미에르·포도의 달)의 시작으로 정하고 있으므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우스력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
프랑스 혁명사 시간에 배웠던 이 달력이 뜬금없이 떠오른 것은 차라리 이 날들이 없었으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 때문이다. 자연조차 이성으로 재편하려던 혁명주체들의 과욕과 영혼이 따라올 시간을 기다리던 인디언들의 겸손을 어찌 비교하랴만, 전혀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달력에서 이 날들을 비워버리고 지나온 시간 어디쯤인가에서 허위허위 나를 따라오고 있는 영혼을 기다린다면 이 또한 혁명적 발상일 터이다.
시간의 화살표는 늘 한 방향으로 흐른다. 거꾸로 뒤집을 수 없다. 아니, 인간은 시간을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러나 시간은 내 밖에 있지 않다. 시간은 나의 존재형식이다. 2006년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도, 2005년이 우리를 놓아두고 저절로 흘러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시간과 함께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간다. 2005년이 온전한 우리의 시간이 되려면 괴롭지만 기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리는 시간은 맘껏 게을러도 되는 시간이 아니다. 느리게 산다는 것과 게으르게 산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게으른 영혼은 천천히 또박또박 자신을 깨우쳐야 할 시간을 헛되이 흘려보낼 뿐이다. 기다리는 시간은 미뤘던 일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는 시간이다. '이 지구의 동식물들 중에서 '미루는 것'을 발명한 것은 인간 뿐이다. 어떤 나무도, 동물도 미루지 않는다. 인간만이 미룬다.' 시인 류시화의 말이다. 2005년 내가 미루지 말았어야 했는데 미룬 일은 없는가. 나는 무엇이 바빠 그 일들을 미루었는가. 영혼이 뒤따라올 시간 동안 우리가 해 두어야 할 일은 그걸 헤아려보는 일 아니겠는가.
지난 1년은 괴로운 시간이었다. 대학교수들이 오죽했으면 '상화하택(上火下澤)'을 올해의 사자성어로 정했겠는가. 쫓기듯 뭔가를 선점하려고 아귀다툼을 벌여오지 않았던가. 황우석 교수의 거짓 논문은 '실적'에 쫓겨 앞으로 앞으로 내달려야만 하는 시대의 상징이다. 2005년 마지막 달력을 걷어치우기 전에, 또다시 2006년 시간의 톱니바퀴 속에 말려들어가기 전에 잠시라도 멈춰 서서 맑은 정신으로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차분히 돌아보자.
/양 훈 도 (논설위원)
영혼이 뒤따라올 시간
입력 2005-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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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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