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rolling)’이라고 하면 영국의 록 그룹 ‘롤링 스톤(구르는 돌)’이나 미국의 대중잡지 ‘롤링 스톤’ 또는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K 롤링의 ‘롤링’부터 떠올릴 두뇌들이 많을지도 모른다. ‘피칭(pitching)’이라는 단어는 어떨까. 십중팔구 박찬호나 김병현의 내리꽂기 식 아니면 올려 꽂기 식 야구공 던지기 피칭이나 동전 던지기 피칭, 으리으리한 빌딩 로비의 대리석 포석(鋪石)―돌바닥 등의 피칭부터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항해하는 마도로스에겐 롤링과 피칭이 전혀 다른 뜻이다. 뱃사람에게 ‘롤링’이라면 파도에 의한 배의 가로 흔들림이고 ‘피칭’은 상하 요동이다. 웬만한 파도에 의한 배의 롤링과 피칭이야 흔히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선장을 비롯한 승무원과 만원 승객의 극렬한 편 가르기 싸움과 심한 쏠림에 의한 롤링과 피칭이 격심하다면 어떻게 될까. 침몰은 시간 문제다.
2006년의 닻을 방금 올린 배 ‘한국호’는 롤링과 피칭이 너무나 심하다. 롤링은 좌우 이념 대결에 의한 가로 흔들림이고 피칭은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갈등에 의한 상하 요동이다. 이 격심한 동요에 시 시크―멀미를 일으킨 나이든 세대, 지각 있는 얼굴은 노랗게 질려 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봐도 선상엔 멀미약을 판다는 간판 하나 보이지 않는다. 얼마만 더 항진하면 멀미약을 줄 수 있다든지 없다든지 그런 기색, 기미조차 없다. 더욱 불안한 건 항로와 중간 기항지, 그리고 종착 항이다. ‘한국호’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지난 12월 로마 교황청은 한국을 ‘브레이크 없이 비탈길을 질주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항로가 불분명한 위험한 논스톱 항진이 ‘한국호’라는 한국 평론이다. ‘대한제국호’는 1910년 일제의 파고에 의해 침몰했고 영국의 호화 유람선 타이태닉호는 그 2년 뒤 북대서양 빙산을 들이받아 가라앉았다. 이쯤에서 불길하게도 영화 ‘타이태닉’의 여주인공 케이트 윈슬렛 노파가 침몰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이 떠올라 지울 수 없이 괴로운 까닭은 무엇인가.
두 번 다시 ‘한국호’ 침몰은 없어야 한다. 지난해 ‘한국호’ 선상에서 즐거웠던 기억이라고는 청계천 시궁창이 시원스레 뻥 뚫린 것과 아드보카트가 날아와 강팀들의 골 그물을 펑펑 갈라주던 장면, 그리고 우리 ‘대중의 영웅’들에 의한 멈춤 없는 한류 소식밖엔 없었다. 금년 역시 기대할 낭보라고는 독일 월드컵 승전보와 그침 없는 한류 물결뿐일지 모른다. 오랜 불황에서 탈출한 일본 직장인은 지난 연말 평균 80만엔의 보너스를 받고 희희낙락했다. 고이즈미 총리와 마치다(町田顯) 최고재장관(대법원장)이 610만엔, 중·참의원 의장이 555만엔, 장관 445만엔, 차관 356만엔, 국회의원 331만엔…. 집권 자민당 무파벌 의원은 100만엔의 떡값까지 더 받았다. 그들은 올해 반도체 산업을 연합, ‘타도 삼성’을 외치고 금후 5년간 과학기술 연구 개발에 무려 25조엔을 투자한다. 중국과의 아시아 패권 다툼에도 한 치의 양보가 없다.
‘중화(中華)’라는 말 그대로 세계의 중심에 서려는 ‘중국호’의 항진도 무섭고 항로도 뚜렷하다. ‘이코노미스트’지 2006년 보고서는 ‘중국의 GDP(국내총생산)가 11년 후인 2017년엔 미국을 추월, 톱으로 올라서고 군사력 또한 막강해질 것’이라고 적고 있다. 과학기술 개발에도 박차, 2020년엔 달에 과학 기지를 세운다는 대국이 중국이다. 이런 중국을 간파하기 위해 미국 땅엔 지금 중국어 열풍이 뜨겁다. 미·소 양강의 부활을 꿈꾸는 러시아와 금세기를 중국과 인도의 ‘친디아(Chindia)의 세기’로 겨냥한 인도의 성장은 어떤가. 한국처럼 강국에 둘러싸여 있는 나라라면 스위스와 아프가니스탄이 있지만 남북이 대치한 한국과는 전혀 상황이 다르다. ‘한국호’의 롤링과 피칭은 더 이상 안 된다. 이 작은 배 ‘한국호’의 쾌속 순항을 위해선 백번 천번 강조해도 부족한 오직 공동체 통합의 힘, 합쳐진 두뇌의 힘밖에 없다.
/오 동 환(논설위원)
롤링과 피칭의 ‘한국號’
입력 2006-0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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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0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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