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장관 입각을 두고 열린 우리당이 한바탕 내홍을 겪었다. 한나라당도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여당과 죽기살기 식으로 일전을 불사하고 있는 야당 입장에선 어떤 형태로든 정부와 여당에 흠집을 내야만 하는 처지이기도 하겠으나 유 의원이야말로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 혹은 ‘노 지킴이’ 등의 닉네임이 붙을 만큼 한나라당에 많은 상처를 준 장본인일 뿐 아니라 그의 개혁성향이 비위에 맞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일반 국민들도 유 의원의 입각에 대해 별로 인 듯 하다. 일전에 모 일간지가 지난 1·2 개각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51%가 이번 개각이 잘못되었다고 답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된 인사로 유시민 의원의 보건복지부 장관직 내정을 꼽았다. 불과 8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인 만큼 조사결과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유 의원이 워낙 튀는 발언을 자주 하는 인사이다 보니 좋지 않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여론조사결과를 간과할 수 없는 점은 그의 개혁적 성향도 걸림돌이 되지 않았나 싶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면서 선거 때만 되면 선량 후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개혁을 외쳐댔다.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권력을 빼앗으려는 정략적 차원에서 차별화가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이 내세우는 개혁의 목소리는 높아만 갔고 개혁강도도 더욱 심해졌는데 김대중 정권이 등장한 이후부터 특히 심해졌다. 구조조정,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지배구조 개선과 빅 딜, 벤처, 글로벌 스탠더드 등 생경한 신조어들이 속출했다. 내수진작을 위해 1가구 다주택 보유를 권장하고 카드 돌려 막기도 기승을 부렸다. 사상 초유의 외환위기란 엄청난 충격의 와중에 출범한 탓에 김대중 정부의 개혁강도는 물론 그 파장도 클 수밖에 없었다.
강도 높은 개혁 무드는 노무현 정권에서 절정에 달했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빌미로 부동산부자들을 옥죄었으며 카드 돌려 막기도 금지했다. 투명하고 공평한 사회를 표방한다며 성매매 금지법 제정, 접대비 실명제 실시, 호주제 폐지 등으로 사회를 온통 뒤흔들어댔다.
결과는 어땠는가. 서울 강남의 중대형 아파트 소유자들은 집 값이 크게 올라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반기고 있다. 반면에 건설경기는 실종되고 서비스업도 덩달아 위축되었다. 재벌계 대형 마트들은 약진을 계속하고 있으나 재래시장에는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웠다. 비정규직 노동자수나 청년실업자수도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국민들의 세 부담은 점차 늘어가고 재정 건전성도 크게 훼손되었다. 중산층이 대거 무너지면서 사회 양극화도 더욱 심해져 급기야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들 중 멕시코 다음으로 소득불평등도가 높은 나라로 전락했다.
정부는 연일 경제지표들이 좋아지고 있다며 호언하고 있다. 또한 사회양극화 심화는 참여정부의 탓이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으나 영세상인들에 귀 기울여 보라.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재벌들은 놔두고 힘없고 백 없는 서민들만 힘들게 한다며 정부에 대한 불만들이 팽배해 있다. 부자들은 언감생심이고 춥고 배고픈 서민들까지 개혁 운운하면 손사래를 치고 있다. 이러니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역대 대통령 중에서 최하위를 기록할 수밖에 없으며 개혁성향이 강한 유시민 의원의 장관 입각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이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다. 또한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서도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간의 지속적인 개혁작업으로 대다수 국민들에게 개혁에 대한 염증만 누적시켰다. 서양 근세시대 봉건적 반동의 사례에서 보듯이 역사는 진보(進步)만의 편이 아니다. 다가올 지방선거 결과가 어떨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이 한 구(논설위원)
개혁피로증후군
입력 2006-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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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8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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