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개운치 않다. 지난번 국무위원 인사 말이다. 국회 인사청문회도 거쳤고 대통령이 임명장을 수여했고 신임장관들이 장관석에 착석했으니 그냥 넘어가도 될 법 한데 가슴속에선 불편한 잔상이 끊임없이 솟구친다. 어차피 떠나버린 버스인데도 “스톱, 스톱!” 외치며 손사래를 치고 싶으니 묘하다. 그 이유를 곰곰 생각해보니 버스 떠난 정류장, 매캐한 매연이 가득한 그 자리에 음주운전으로 승차를 거부 당한 사람들이 콜록대고 있다. 발차 시간에 늦은 것도 아니요, 남들 보다 뒷줄에 선 것도 아닌데 그 웬수 같은 음주운전에 걸려 떼밀린 사람들이다. 문제는 떠나 버린 버스에 승차해 느긋한 사람들의 면면이다. 음주운전 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은 법 위반자와 범법 혐의자들이 태반이다. 택시기사가 이런 식으로 사람을 골라 태우다간 멱살잡히기 십상이다.
버스를 타고 떠난 사람들의 문제는 이미 다 공개됐다. 유시민 복지부장관은 국민연금법의 지역가입자 신고의무를 위반하고 보험료를 미납했다. 이상수 노동부장관은 선거법위반 혐의로 검찰이 소환을 종용하는 처지이다. 이종석 통일부장관은 여당 의원 조차 그를 낙마시키려 국가기밀문서를 공개하는 바람에 톡톡히 봉변을 당했다. 김우식 과기부총리는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내면서도 대기업으로 부터 사무실을 지원받아 사용했다. 그리고 정세균 산자부장관은 6년간 78차례나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 인품에 대한 인상주의적 비판이나 재산형성 과정의 도덕성 논란이 있었지만, 이를 무시한다 해도 법적 시비를 엄격하게 벌일 경우 얼마든지 장관 결격사유가 될 수 있는 커다란 '잡티'들이다.
하지만 청와대와 당사자들은 인간적 이해나 상식선의 관용을 내세워 잡티 많은 이들 모두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유 장관은 고의적이 아니니 봐줘야 하고, 이 노동장관은 무죄추정 원칙에 따라 지켜봐야 하고, 정 장관은 지역구인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이 무진장 멀어 운전기사가 무리한 탓이니 어쩌겠느냐'는 변명을 달고서다. 물론 보통사람들의 일이라면 까짓거 살다보니 겪은 횡액으로 여길만한 변명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정체성에 비추어 보면 이런 변명은, 참여정부 사람들의 자기 관리가 매우 부실한 기준에서 인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명할 뿐이다. 노 대통령의 '10분의 1' 기준이 작동하는 것이다. 자신의 불법대선자금이 야당의 그것에 비해 10분 1 이상 밝혀지면 대통령직을 내놓겠다던 노 대통령이다. 이런 기준은 참여정부 구성원들 사이에, 자신들은 아무리 흠집이 있어도 '보수골통' 보다는 10분의 1 밖에 나쁘지 않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니 자기들 보다 10배나 나쁜 인간들의 시비가 귀에 들어올리 없다. 하지만 이같은 오만에 대해 대중의 반응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이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관리하지 못한 채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결과는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율에 고스란히 드러나있다.
여권 내부의 오만과 편견을 감안한다 해도 이번 국무위원 인사는 '10분의 1' 기준 마저 깬 파격적 코드인사였다. 외교부 고위관리나 검찰의 검사장급 인사는 음주운전을 이유로 승진에서 탈락시킨 채, 잡티 가득한 대통령의 사람들을 국무위원석에 앉혔으니 그렇다. 특히 불법대선자금을 조성해 노 대통령을 지원했다가 옥고를 치른 이 노동장관의 발탁은 심각하다. 불법자금의 정치권 유입을 죄악시하는 참여정부 아닌가. 노 대통령은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스스로 허문 셈이다.
아무튼 정부는 지난번 국무위원 인사를 통해 음주운전을 제외하고는 웬만한 잡티는 세파의 굴곡쯤으로 여기는 새로운 인사기준을 제시했다. 공직자들은 승차거부 당한 민망한 꼴을 가족에게 보이지 않으려면 음주운전만은 절대 삼갈 일이다. 음지가 있으면 양지가 있는 법. 대리운전 업계에 때 아닌 공직자 특수가 불지 모르겠다.
/윤 인 수 〈논설위원〉
음주운전 빼곤 다 괜찮다?
입력 2006-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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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5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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