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만나는 기업인들마다 이구동성으로 환율 때문에 기업할 맛이 나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수출관련 중소기업인들은 아예 말수가 줄어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달러환율이 2002년 2월의 1천327.7원을 정점으로 달러화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 최근에는 900원대 중반조차 위협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새해 들어서는 달러화가 마치 봅슬레이를 타듯 빠르게 미끄러지고 있다.
경기가 되살아나고 있다고는 하나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고단하다. 장기간의 내수부진에다 중국 등의 저가공세로 매출이 신통치 못하다. 더구나 고유가 탓에 원자재가격이 상승행진을 거듭하는 터에 인력 확보난에 따른 인건비부담 가중까지 가세함으로써 수익성은 형편없이 떨어졌다. 납품업체들의 사정도 그다지 좋지 않다. 그동안 정부는 대기업들의 납품업체에 대한 횡포를 억제하기 위해 납품대금에 대한 현금결제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협력을 강조하고 있으나 대기업들의 ‘기름 짜기’식 납품업체 압박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지경이니 은행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기피할 수밖에 없다. 차제에 중소기업들은 금리가 상대적으로 비싼 제2금융권으로 몰려 상호저축은행의 중소기업대출금액은 사상최고를 기록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중소기업들은 환율폭풍에 강타를 당하면서 휘청거리고 있다.
그런데 환율문제는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될 것 같지 않다. 최근 새로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에 취임한 벤 버냉키 교수는 미국 경상수지 적자의 최대주범으로 산유국을 포함한 아시아국가들의 비상한 경상수지흑자를 지목하고 이런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세계경제 전체가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따라서 중국 위안화는 물론 원화에 대한 압박강도를 더욱 높일 것은 명약관화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원화가 여전히 고평가되어 있다며 버냉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러니 재계가 달러화의 추가하락여부에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바야흐로 기업들은 올해 경영계획을 수정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른바 환율경영이다. 그 와중에서 현대, 기아자동차가 환율하락으로 채산성이 악화되자 부품납품업체들에 대폭적인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작금 대기업들의 납품단가 인하요구는 업종을 불문하고 가히 전방위적이다. 대기업들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그나마 일거리마저 끊기기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들의 무리한 요구에 변변히 저항도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이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이 요구도 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납품가격을 인하하는 해프닝도 벌어지고 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는 환율 급락으로 수출 중소기업 3분의 1이 적자수출을 하고 있으며 5.2%는 채산성이 급속히 악화돼 중소기업의 연쇄도산이 우려된다며 정부에 대해 고질적인 납품단가 인하 근절과 환변동보험료 추가 인하, 그리고 적극적인 환율방어를 주문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대처는 지극히 안이해 보인다. 주무부서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납품단가인하 혐의가 큰 업종을 중점 조사하겠다”며 으름장만 놓고 있으니 말이다. 대기업들이 현대자동차처럼 미련하게 납품업체들을 압박하겠는가. 더욱 딱한 것은 외환당국의 태도이다. 외환거래량이 하루평균 40억달러를 상회하는 상황에서 당국이 자칫 잘못 개입하면 외국 투기자본의 배만 불리는 등 부작용이 생길 뿐 아니라 지금처럼 경제규모가 커진 상황에서 기업들 스스로 환리스크에 대처해야 한다며 먼 산 불 구경하듯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조차 외환당국의 안이한 환율관리에 불만을 토로하는 실정인데 환리스크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중소기업들이야 오죽하겠는가. 국내 고용의 87%를 점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점차 거세지는 환율 칼바람에 어느 정도 버텨낼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이 한 구(객원논설위원·수원대 교수)
환율에 떠는 중소기업
입력 2006-0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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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22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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