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조간신문을 뒤적이다 참 재미있는 기사를 읽었다. 요즈음 미국사회에선 새 유전자(DNA)검사로 자신의 혈통찾기 붐이 크게 일고 있다는 내용이다. 얼핏 20여년 전 지구촌 곳곳을 감동시켰던 ‘알렉스 헤일리’의 소설 ‘뿌리’를 떠올렸다. 그때의 열기가 참 오래도 지속된다 싶었다. 그런데 좀더 읽어내려가다 보니 그렇게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와서 다시 뿌리찾기 붐이 이는 건 자신이 혼혈인이라는 걸 입증받고 싶어서라는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엔 참 이상한 사람들도 많다’는 느낌부터 들었다. ‘우리 같으면 가능한 한 일부러라도 숨기고 싶어 할텐데’하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그같은 생각 역시 너무도 단세포적이었음을 금세 깨달았다. 그들이 그처럼 뿌리찾기에 혈안이 된 건 소수인종에 대한 다양한 혜택과 지원을 노려서였던 것이다. 소수인종의 피가 조금이라도 흐르는 게 밝혀지면 대학입시나 취업 등에 꽤 많은 혜택과 지원을 받는 모양이다. 처음엔 좀 부러웠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도 조만간 그런 세상이 올 것 같아서였다.
얼마 전 미국의 슈퍼볼 스타 ‘하인스 워드’가 다녀가면서 우리 나라에 제법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새삼스럽게 미디어마다 다투어 국내 혼혈인들의 애환을 크게 다루고, 각계의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통령도 한 말씀하셨다. “한국에도 혼혈인들이 훌륭하게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하겠다”고. 정부와 정치권도 서둘러 나섰다. 우선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국제결혼가정에 대한 차별 금지법’제정을 추진키로 했다. 이에 뒤질세라 한나라당은 ‘혼혈인 및 혼혈인 가족 지원법’제정안을 발의했다. 여기에 혼혈아 인권상황이 국가인권위원회의 올해 주요실태조사 과제로 선정되기도 했다.
법제정 추진 내용들도 자못 획기적인 것들이 많이 담겨 있다. 먼저 한국인과 사실혼 관계의 외국인 및 그 자녀들에게 국적과 영주권을 부여하도록 한다는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국적취득을 못한 외국인 배우자가 수만명이나 된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그들은 물론 그로 인해 신고도 안된 혼혈 자녀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여기에 혼혈인의 일정비율을 대학입학 때 의무적으로 할당하는 방안도 추진되는 모양이다. 갖가지 차별과 편견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사뭇 큰 힘이 되어줄 듯도 싶다. 그러나 한편으론 염려도 된다. 자칫 지나친 특혜로 비치어 또 다른 역차별 시비에 휘말리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다. 쓸데없는 노파심일까. 이외에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상당히 많은 안들이 적극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뒤늦게나마 크게 환영할 일들이다. 이쯤되면 우리 나라라고 미국에서처럼 DNA검사 붐이 일지 말라는 법도 없을듯 싶다.
그런데 이렇게만 하면 모든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아쉽지만 대답은 역시 ‘노(NO)’이어야 될 듯 싶다. 외모나 피부색 등에 따른 사회 일반의 뿌리깊은 편견이 과연 법제정 등만으로 쉽게 지워질 수 있을지, 조금은 의구심이 들어서다. 무엇보다 오랫동안 자랑삼아 외쳐온 ‘단일민족’자부심(?) 역사는 또 어떤 식으로 바꾸어 나가야 할는지. 여전히 남는 문제들이 사뭇 만만치 않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갖가지 현명한 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중이니까 괜한 걱정부터 앞세울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저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토록 뜨거운 환영 열기를 몰고왔던 ‘하인스 워드’는 이미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한달 뒤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때가서도 먼저 번 같은 열기가 재현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아무튼 그의 성공이 우선은 고맙다. 이정도나마 바뀌어지는 게 어느 만큼은 그의 보기 힘든 ‘성공신화 덕’이려니 싶기도 해서다.
/박 건 영(논설실장)
성공신화가 고맙다
입력 2006-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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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9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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