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 팽성읍 일대엔 '바보들'이 떼지어 산다. 그들 중 누구 한 사람 만나본 적이 없지만, 적어도 국방부 발표로는 '바보들'이 틀림없다. 국민이 정부 말을 믿어야지 혼자서 판단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러니 따지지 말고 일단 믿기로 하자. 너무 따지면 '빨갱이'로 몰린다. 국가보안법은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다.
국방부는 '여명의 황새울'을 점령하기 직전 기가 막힌 자료를 하나 내놓았다. 대추리 주민의 평균보상금이 5억3천만원이라는 것이다. 200만원짜리 월급쟁이가 한푼도 안쓰고 20년 이상 모아야 하는 돈이다. 판교 당첨자는 다른 얘기를 하겠지만, 월수 100만원이 안되는 비정규직은 평생 일해도 만지기 힘든 거액에 해당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미군기지 반대 대책위 간부들의 경우 평균 보상가가 19억2천만원이란다. 판교 아파트를 몇 채 살 수 있는 거금이다. 이런 사람들이 왜 결사반대 투쟁을 벌이는 걸까. 우선, 그들이 더 많은 보상을 원한다고 추측해볼 수 있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원, 욕심도 많지. 그런 갑부들이 '송곳 꽂을 땅도 없는' 국민들을 우롱해? (실제로 국방부 발표 뒤 이런 글들이 공공연히 나돌기도 했다.)
그런데 어째 이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오갈데 없는 세입자 철거민도 아닌데 단전·단수에 온갖 탄압을 견뎌배기며 더 많은 보상금을 노렸다? 그들은 미쳤든가 바보거나 둘 중 하나다. 한데, 그곳에 정신이상자가 많다는 보도가 없는 걸 보니 그들은 바보임에 틀림없다.
'대추고지'가 우리의 국군에 의해 '탈환'된 뒤, 저들이 '바보들'이라는 사실이 또한번 대대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수백명 연행자와 수십명의 구속자 가운데 정작 그곳 주민들은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뒤집으면, 대추리와 도두리 '바보들'은 줏대도 주견도 없는 사람들이어서 외부의 불순 선동세력에 의해 철저하게 놀아났다는 뜻이 된다. 허, 거 참, 딱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엊그제 신문에 보니 사진 한 장이 실렸다. 폐허가 된 대추분교에 '불순세력의 하수인'들이 '평화'라고 쓴 흰 깃발을 세우는 장면이다. 지난 수십년간 받아온 반공교육의 공식을 그대로 대입하면 저들이 주장하는 '평화'는 거짓 구호가 분명하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대추리에 평화 깃발을 꽂아놓고 음흉한 남침 야욕을 가려주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만도 하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정반대 의심이 고개를 든다. 팽성으로 미군기지가 이전해야만 평화가 보장된다는 주장은 또 어떻게 증명되지? 외국군대가 없는 상태가 평화인가, 그들이 와야 평화가 유지되나?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답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양자의 평화 주장은 관점의 차이일 뿐 누가 거짓이고 누가 참인가의 문제는 아니다. 두 평화가 처음부터 '소통불가'였을까, 아닐까?
과문한 탓인지 국방부가 미군측과 협상을 하기전 팽성 주민들의 뜻을 먼저 물어봤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냥 결정했을 뿐이다. 좋다. 나라에서 국책사업으로 하는 일을 언제 주민에게 물어보고 했던가? 애초 결정이야 그렇다 치고, '여명의 황새울' 작전을 펼치기 며칠 전에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겠다고 밝힌 것은 뭐였나? '바보들'을 마지막으로 속이려는 작전의 일환? 안타깝게도 국민들 중엔 그 쇼를 믿은 바보도 많다.
겁이 나서 덧붙이는 말이지만, 나는 주한미군의 존재 자체를 거부할 생각이 없다. 깊이 따지지 않고 무조건 정부의 말을 믿고 싶다. 하지만 멀쩡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드는 일은 참기 힘들다. 그리고 세상엔 '다른 평화'를 외치는 '바보들'이 있고, 그런 '바보들'의 자기방어권 역시 보장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게 내가 아는 자유민주주의다.
/양 훈 도(논설위원)
바보들의 행진
입력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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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10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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