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 전 5세기 중반, 아테네 민주주의를 완성시킨 페리클레스는 정치 방관자를 아예 ‘쓸모없는 자’로 치부했다. 그는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는 사람이 개인적인 일 뿐 아니라 공적인 일에도 관여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는 우리가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을 무관심한 자로서 뿐 아니라, 쓸모없는 자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아테네엔 정치적 방관자를 처벌하는 법이 있었다 한다. ‘솔론의 개혁’ 때 만들어진 것으로, 혁명이나 정치투쟁이 일어날 때 어느 편에도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시민권을 박탈한다는 내용이었다.

근래들어 우리나라에 ‘쓸모없는 자’들이 자꾸 느는 것 같다. 5·31지방선거가 불과 2주 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도 아직 선거일이 언제인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러니 정당이나 후보들의 소견 정책따위는 말할 나위도 없다.
실제로 얼마 전 어느 지방대학에선 투표일을 모르는 학생이 10명 중 4명 꼴이라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투표 여부를 묻는 질문엔 꼭 하겠다는 응답이 기껏해야 17.2%에 그쳤다. 가능하면 투표하겠다는 응답도 14.6% 뿐이었다고 한다.

모두가 이런 식이라면 선거가 자칫 정치인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도 없다. 지난 1998년 지방선거에서 52.7%이던 투표율이 2002년 48.8%로 줄었던 걸 봐도 이런 우려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자에게 인센티브를 주자”는 말까지 나왔을까 싶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단지 유권자만의 잘못일까, 하는데엔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후보 공천에서부터 돈으로 얼룩지고, 여전한 금품 향응에 폭로 비방으로 이전투구를 벌이는 지겨운 정치판의 되풀이. 이런 터에 정치 무관심은 차라리 점잖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예 정치 혐오가 부추겨졌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정치 무관심엔 정치 신인들의 ‘자기 알리기’어려움도 한몫 거드는 게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이들이 자신을 알리는 방법이란 고작 명함 돌리기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온종일 발품을 파는데 비해 효과는 너무도 미미했다. 새벽부터 약수터 음식점 시장 등지를 돌지만, 쓰레기만 양산하는 꼴이 되고 만다. 유권자들 무관심에 ‘왕따 당하는 기분’이란 푸념들도 나온다. 하기야 유권자들도 생판 모르는 사람이 인사하고 명함 건넨다고 선뜻 없던 관심을 쏟아줄 리도 없다.

사실 기존 정치인들에게 식상한 유권자들은 보다 참신한 신인들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같아선 누가 참신하고 유능한 일꾼인지 쉽게 알려줄 방법이 거의 없다. 이메일 선거운동을 할 수도 있다지만, 유권자 이메일 주소 구하기가 어찌 그리 쉬운 일이랴. 그나마 내일부턴 차량 확성기를 이용한 거리유세가 가능하다지만, 그땐 또 소음공해 때문에 되레 외면 당할지도 모르겠다.

이래 저래 정치 방관자, 나아가 쓸모없는 자들만 늘어나게 생겼다. 그렇다고 마냥 현실만 탓할 수도 없다. 어차피 누군가는 내 고장을 위해 일해 주어야 한다. 현실이 방관자를 만들어 낸다며 언제까지 변명아닌 변명만 늘어놓을 처지가 아니다. 도리없이 ‘국민의 권리이며 의무인 참정권’을 포기하지 말라고 교과서적인 뻔한 말만 되풀이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아무나 내 고장 일꾼을 삼을 수는 없을테니까.

오늘 후보자 등록이 끝나면 내일부턴 본격적인 공식 선거전에 들어간다. 이제부터라도 제발 관심 좀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정당이나 후보자들을 대신해 거듭 거듭 부탁 드리고 싶다. 애써 되찾은 민주정치의 장래를 변명만 늘어놓으며 갈수록 비참하게 만들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자로 전락해선 더 더욱 안되겠고.

/박 건 영<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