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집에 가서 아이나 돌보라”는 말을 흔히들 한다. 친숙한 사이라면 가벼운 농담으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듣는 쪽에선 그다지 유쾌하지 못하다. 특히 하고 있는 일이 서툴러 주위 눈총을 의식하거나, 일거리가 없어 고심할 경우엔 더 더욱 그렇다. 속 사정이야 어떻든 모욕감 분노부터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몇년 전 어느 정치인이 “노인들은 집에 가서 아이나 돌보시오”라고 했다가 혼쭐이 난 것도 다 그래서다.
그런데 이젠 더 이상 노인들도 모욕감과 분노에 잠길 수만은 없게됐다. 늙고 쇠약해져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는 노인들이, 아이를 돌보고 싶어도 돌봐줄 아이가 별로 없는 것이다. 노인 인구는 급격히 늘어나는데, 출산율은 갈수록 줄어든 결과다.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지만, 20여년 전 2.1명이었던 출산율은 절반 가까운 1.08로 뚝 떨어졌다. “그럼 이제부터 무얼 해야하나.” 노인들 고민이 이만 저만 아닐 것 같다. 어디 노인들 뿐이랴. “이런 추세라면 국가활력 쇠퇴와 더불어, 생산동력 상실과 후세대 부담 증가 등 심각한 후유증이 빚어진다”며 너도 나도 걱정들이 태산 같다.
고심끝에 정부가 ‘제 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시안’을 마련했다. 영·유아 보육·교육비 지원을 크게 늘려 아이를 많이 낳게 하고, 직장 정년연장 등으로 고령친화적 사회기반을 구축한다는 게 골자다. 모처럼 야심찬(?) 계획에도 불구, 대다수 국민 반응은 마냥 시큰둥하다. ‘백화점식 대책’ 나열에 그쳐 현실성이 부족하고, 적극적인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32조원 재원마련 부터가 미덥지 못하다는 투다. 비과세 축소 등으로 마련한다지만, 이름만 바꾼 증세(增稅)정책이란 불만이다. 보건복지부 장관도 “국민들 중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해 이를 어느 정도 시인하긴 했다. 손해보기 좋아할 국민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보육·교육비 등 경제적 지원 확대가 곧바로 출산율 확대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라고 한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여성 부담을 덜어줄 사회적 육아기반 마련책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기껏해야 국·공립 보육시설을 두배로 늘리는 것밖에 더 있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고령화 대책 역시 실망스럽긴 마찬가지란 반응이다. 노인들에 적합한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어낼지 실질적 방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정년 의무화를 도입한다지만, 당장 기업들이 따라줄지도 의문이란 지적이다.
이쯤되면 정부로서도 맥이 빠질 노릇일게다. 하지만 이 정도에 의기소침 할 것까지는 없을 것 같다. 앞으로 공청회 등 여론수렴 과정이 남아 있다. 그때까지 좀더 다듬고 보완할 여지는 있다. 다만 너무 서둘러 졸속은 되지 말아야겠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 모든 걸 오로지 정부에만 떠맡길 일은 아니라고 본다. 저출산 문제만 해도, 가사와 양육이 여성에만 집중돼 있는 가정 분위기부터 국민 스스로 고쳐나가려는 의지가 필요하다. 기업들 역시 출산·육아에 직장일까지 겹쳐 고생하는 여성 근로자들을 좀더 보듬는 자세가 요구된다 하겠다. 정년보장 등에 대한 적극적인 협조도 물론이다. 지금 당장의 이익에 앞서, 향후 양질의 노동력을 위해서도 이같은 일들은 꼭 필요하다. 이처럼 아이를 낳고싶은 사회, 노후걱정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정부 뿐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몫인 것이다.
스웨덴이나 프랑스는 드물게 저출산·고령화를 극복한 나라로 꼽힌다고 한다. 그들은 어떤 정책을 써 왔는지, 그 정책들을 우리 현실에 맞춰 좀더 참고삼을 수는 없을까. 그런다고 저작권법에 저촉될 리는 없을텐데.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 답답한 김에 별 생각 다해본다.
/박 건 영(논설실장)
의기소침 할 것까진 없다
입력 2006-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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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6-14 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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