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열리고 있는 월드컵대회가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구며 온통 축제 분위기다. 거리에서도 또 집안에서도 환호와 열기가 가득하다. 태극전사들의 투혼 못지않게 응원열기가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프리카의 강호 토고를 이겼고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프랑스 팀과 비겼다. 16강이 눈앞에 보인다. Red devil. 붉은악마들로 독일 경기장과 응원장이 온통 붉게 물들고 있다. 독일로 간 수만원 응원인파를 보면서 국력 신장에 놀라움을 금할 수없는 것이 요즘 우리의 모습이다. 아버지 세대는 후진국, 우리는 중진국, 우리 자녀들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에 살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이런 점을 거리낌 없이 자랑스러워 하기엔 어딘가 찜찜하다. 월드컵 열기에 반해 우리의 대내외적인 현실이 새삼스럽지 않아서다. 지난 주말 우리는 큰 혼란을 겪었다. 미국과 일본은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가 임박했다며 제재방안을 거론하면서 우리를 헷갈리게 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 안보에도 심각한 위협이자 한반도 주변정세에 큰 장애요인이 아닐 수없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정부는 발사 가능성은 있지만 설마하는 회의적 반응을 보이며 외교채널과 대북통로를 통해 발사자제를 주문한 것이 고작이다. 일본은 휴일인데도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는 등 수선을 떤데 비해 우리는 너무 평온하고 축구 열기로만 들떠 있었다. 북한이 우리 목에 총을 들이대고 있는데 말이다.

 북한은 그동안 핵개발 문제로 무던히 우리 속을 썩였다. 6자회담 참석여부를 놓고 목적과 필요에 의해 우리를 이용했다. 한 때는 지정학적인 리스크가 높아져 외국인들의 투자가 줄거나 썰물처럼 빠져 나가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 그런 북한이 이번에는 미사일 실험 발사로 우리를 다시 강압하고 있다. 인도적 지원이란 명목으로 받을 것 다 받고 그것도 모자라 전쟁불바다론을 거론하는 후안무치한 행태도 서슴지 않고 있어 그들의 몰염치가 지겨울 정도이다. 더이상 이들의 술책에 끌려 다니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대북지원에 있어 ‘될 것 안 될 것’을 분명히 가리고 대가없는 도움이 없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리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는 북한정권의 봉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월드컵 열기가 국내의 산재한 난제들에 대한 마취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 만해도 환율, 고유가, 인플레이션 등 경제에 드리운 먹구름에 대한 토의가 활발했다. 여당의 선거참패에 대한 논란과 함께 정부와 정치권의 무기력을 질타하고 걱정했다. 대통령의 레임덕으로 인해 생길 수있는 정책적 혼란을 경계했으며 불확실성이 증대하는 경제와 침몰지경인 서민경제를 염려했지만 현재는 오직 월드컵 함성만 남아 있다. 세인들의 관심도 월드컵 뿐이다. 함성에 묻혀서인지 걱정하고 우려하는 소리가 작고 방안마련이 실종상태여서 염려가 앞선다.

 지금 세계는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그 한가운데 우리가 있는 것이다. 러시아를 보고 중국과 인도에 눈을 돌려보자. 러시아는 과거의 힘들고 헐벗는 그런 배고픈 나라가 이젠 아니다. 천연자원의 보고인 러시아는 석유와 구리 등 자원상품 가격이 치솟아 넘쳐나는 달러로 흥청망청 이다.

모스크바의 조그만 아파트 한 채 값이 서울 강남 아파트 대형평수보다도 비싸다고 한다. 세계의 공장인 중국은 또 어떠한가. 외환보유고가 조만간 1조달러에 달하고 매년 9%의 경제성장으로 세계의 이목을 받고 있다. 세계 시장을 잠식하고 우리를 밀어내고 있다. 인도 또한 비슷하다. 이러다간 우리는 설 땅 조차 없게 될 조짐이다. 이들 나라와 비교할 때 우리는 한없이 왜소하고 초라한 것 같은 자괴심만 든다. 월드컵도 좋지만 우리는 이런 난제들의 해결에 게으름이 있으면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성하고 다시한번 떨고 일어나자. 월드컵은 그냥 축제로 즐겨보자. 여기에 우리의 모든 혼이 올인되는 누를 범하지 않도록 해보자. 밝은 우리의 자화상을 위해서이다.

/송 인 호(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