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 불법매각 및 현대차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탄력을 받을 모양이다.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에 이어 연원영 전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도 구속되었으며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과 이달용 전 부행장, 김석동(현 재경부 차관보) 전 금융감독위원회 감독정책1국장 등이 조만간 소환될 예정이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에게도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졌다. 자칫 대규모 산불로 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 와중에서 이헌재사단 혹은 모피아(재경부를 마피아에 빗댄 별명) 등 생경한 용어들이 눈에 띈다. 변양호 전 국장과 줄소환이 임박한 이강원 전 행장, 김석동 차관보 등은 이헌재 전부총리와 학연, 지연, 직장(재경부) 선후배 사이 등으로 얽혀 이헌재 사단의 핵심 3인방으로 불린다.

연원영 전 캠코 사장도 경기고와 서울상대를 거쳐 재경부에 근무하면서 이헌재사단에 합류했다. 이뿐 아니다.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매입건도 이헌재사단의 작품이란 설이 유포되고 있다. 덩달아 재정경제부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 이상 일련의 사건혐의자들이 전부 재경부 출신인 탓이다. 재경부 직원들은 모피아 운운에 마음이 잔뜩 상해 있다.

국민들은 재경부 출신들이 우리나라 금융계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다. 한국은행, 산업은행, 금융감독위원회는 물론이고 심지어 제2 금융권에까지 재경부 출신들이 포진해 있는데 이들은 퇴직 후 새로 얻은 직장에서도 기관장 등 핵심요직을 독식하고 있다. 전문성과 고시패스로 다져진 인맥 덕분에 현직관리들의 전관예우가 극진하다. 현직들 또한 퇴직 후를 대비, 그들의 텃밭을 잘 보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염불은 뒷전이고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형국이니 금융산업에 대한 재경부의 감독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 “지난번 외환위기는 모피아 때문에 일어났다”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어디 모피아 뿐이겠는가. 공기업은 물론이고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는 곳은 예외 없이 해당부처 퇴직공무원들이 장악하고 있다. 오비이락인지는 모르나 작금 들어 각 부처들은 경쟁적으로 산하기관수를 늘리는 인상이 짙다. 민간기업에도 관련부처 퇴직공무원들이 포진, 관급(官給)시장을 지배함으로써 신규기업들의 진입을 막고있다. 심지어 공무원 친목단체들조차 해당기관의 업무와 연관이 있는 수익사업을 운영, 쏠쏠하게 재미를 보고 있다. 더욱 점입가경인 것은 지자체와 공기업들도 중앙부처를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명분이 있고 아이디어만 있으면 일단 조직을 만들어 한물 간 고참공무원들에 맡겨놓고는 구조조정했다고 홍보한다. 적자가 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다. 그리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한번 공무원이면 영원한 공무원’이란 비난을 들을 수밖에 없다.

전문성이나 국가적 기밀이 요구되는 업무 특성상 퇴직공무원들의 효용가치를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퇴직공무원들의 낙하산식 인사가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현상도 아니다. 그렇다고 퇴직공무원들이 산하기관 및 관급 민간기업들을 완전히 장악하는 등 그들만의 잔치가 계속되어야 하는가. 정책실패는 물론 과잉중복투자, 정경유착비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새로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낙하산인사를 척결한다며 요란을 떨곤 했다. 김대중 정부는 퇴직후 2년 동안 유관업체에의 취업제한 및 개방형공무원제를 도입했다. 참여정부는 기관장 공모제를 법제화했다. 그럼에도 가시적인 성과는커녕 오히려 공무원들의 '나와바리(영역)'만 더욱 키웠을 뿐이다. 공무원들은 ‘정권은 유한하고 공무원들은 영원하다’며 코웃음친다. 이러니 세금을 더 걷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것이다. 현정부는 집권 3년 동안 세무조사로만 무려 12조원을 더 걷어들였다는데 앞으로 얼마나 더 걷어들일지 국민들은 걱정이 크다.

/이 한 구(객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