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한 장마가 끝나자마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은주가 연
일 상한가를 갱신하고 있는 이 기간은 본격적인 휴가철이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휴가를 떠나는 이들의 80~90%가 지난 주간과 이번 주간에 걸쳐 휴가
를 떠난다고 한다. 그래서 으레 이맘때쯤이면 남쪽의 어느 해수욕장에서는
피서 인파가 백몇만을 돌파했다는 신문기사가 일면을 장식한다. 어쨌든 이
더위가 사람들의 마음을 휴가를 향해, 그곳으로 달리게 만들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휴가의 풍속도는 다양해졌다. 해외여행을 떠나는 것
도 이제는 더 이상 일부 계층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러나 박봉에 피서를
채근하는 아이들 눈치를 보아가며 살아가는 서민의 입장에서는 선택은 여전
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고향을 찾거나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고 오거나
아이들과 해수욕장을 가는 것이 가장 무난한 휴가인 셈이다
 그런데 막상 그러한 서민적인 휴가를 떠나자고 해도 단단히 각오를 해야
만 한다. 교통전쟁에 가는 곳마다 사람들로 넘쳐 나고, 오디오 볼륨을 잔
득 높여놓은 소리공해, 고기 굽는 냄새공해, 여기저기 너저분하게 내던져
져 있는 쓰레기 공해, 여름 한철을 노리는 바가지 상혼들의 인심공해…. 이
런 상황에 막상 피서지를 향해서 휴가를 떠난다는 것이 망설여지는 것이다.
 휴가란 '일정한 기간 쉬는 일'이다. 말 그대로 '쉬고' '한가하게' 시간
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여름휴가는 단순히 쉬는 것을 넘어 기진한 심신
에 대해 주어지는 보상이다. 여름 휴가는 땀흘리며 일하는 사람들에겐 재충
전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재충전을 위한 휴가를 인산인해의 북
새통 속에서 보낸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더구나 IMF이후로 일용공들이나 노점상 그리고 공공근로나 자활근로로 참
여한 이들에게는 계곡에 가서 발을 담그고 오거나 수영장을 찾아 하루를 보
내는 검소한 휴가조차 사치스러운 일이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그
들이 쉰다는 것은 곧 생활의 궁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연일 계속
되는 폭우로 인해 수재를 당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웃들을 생각하면 해
외여행이다 하는 사치스러운 휴가는 여간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휴가를 의미있고 생산적으로 보낼 수는 없는 것일까? 그 한가지
로 봉사활동을 떠나는 것을 권한다. 사실 휴가기간을 놀고, 먹고, 잔다고
해서 제대로 재충전이 되고 잘 쉰 것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적당한
운동과 적절한 성취감, 이런 것이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해를 당한 이웃을 돕는 일이나 사회복지 시설에서 하는 봉사는 훌륭한 휴
가가 될 것이다.
 필자가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고 있어서 인지 아이들과 가족이 함께 사회
복지 시설에서 봉사하며 휴가를 보내는 것을 자주 보았다. 봉사라는 것이
이웃을 위해 내가 희생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하고 나면 내
가 그 이웃으로부터 많은 것을 얻었다고 느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몸은
비록 곤해 질지 모르지만 마음은 충분히 재충전되는 것이다. 이웃들과 함
께 봉사를 하며 흘리는 땀방울은 그 어떤 것보다 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임영인(신부·성공회 수원나눔의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