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선진형인 나라 대열에 서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88올림픽
이다. 우리나라가 올림픽을 계기로 세계에 널리 그리고 좋은 이미지로 알려
지게 되었다. 88올림픽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혜택은 엄청나게 많다. 그러
나 그 중에서도 제일로 손꼽을 수 있는 것이 우리들 국민의식이 비약적으
로 선진형으로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온 국민이 다 같이 한국인으로서의 긍
지를 느낀 것이다.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기 한 두 달 전부터 서울시민
들은 자진해서 터널이나 다른 도로가 만나는 곳에서 차들이 서로 양보해 가
면서 교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올림픽이 개막되자 시내를 다니는
자동차의 수가 현저하게 감소되었고 따라서 매연없는 맑은 공기와 푸른 하
늘이 영상에 비치면서 서울시는 무척이나 깨끗한 도시라는 인상을 세계인에
게 심어 주었다. 시민들은 우선 외국인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친절했고 많
은 자원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행사를 도왔다. 모든 준비되었던 순서들이
큰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세계는 새로운 모습의 한국을 보았다. 모두가 국
민들이 적극 협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같은 노력의 대가로 우리가 협
조하고 힘을 모으면 선진국 수준의 교양과 질서를 갖출 수 있다는 긍지가
생긴 것이다. 경제성장만 했다고 저절로 얻어지지 않는 귀중한 수확물이다.
 2002년에 있을 월드컵 경기도 우리가 다시 한번 한국의 얼을 세계에 보여
줄 최선의 기회이다. 한국 축구가 16강에 들 정도로 기술이 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의 새롭게 변화된 모습을 보여
주어 경쟁력 있고 국민의식 수준이 높고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는 '좋은 나
라'라는 인상을 이번에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이 지구 공동체
일원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하고 존경하고 그래서 평화를 위해 결속하
는데 앞장서는 민족임을 알려야 한다. 물론 우리들 스스로가 진정으로 그렇
게 되어야 한다.
 내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계기로 온 나라에 신나는 바람이 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신이 나면 고통스럽고 피곤하고 힘들어도 에너지가 생
겨 어려운 과제라 할지라도 쉽게 극복할 수가 있다. 온 국민을 신나게 해주
는 지도자가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래도 대통령
의 임기가 끝나는 무렵이라 신나는 바람을 새삼스럽게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도 지도자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신
바람을 내야 한다. 우리 국민이 앞으로 필요한 리더십은 또 다른 정의를 주
장하는 '옳은 정치가'가 아니라 이제는 '선(善)한 지도자'가 나왔으면 한
다.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느라고 벌어지는 정쟁(政爭)을 끝내고 나라와 국민
을 위한 선한 지도자가 나와서 우리 나라에 신나는 바람을 일으키고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들을 비록 어렵더라도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는 리더십이
아쉽다. 앞으로 국민들이 세금을 얼마만큼 더 부담을 해야 그 동안의 나라
빚을 다 갚을 수가 있는지, 이 나라의 무엇을 어떻게 국민이 도와주어야 좋
겠다는 것을 좀더 솔직하게 말해주고 긍정적인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내일
의 지도자가 해야할 일이다.
 일부러라도 나와 친근한 사람이나 나와 동향인 사람은 아무리 적임자라
도 쓰는 것을 피하는 참신한 대통령. 아침에는 규칙적으로 조깅을 하고 얼
굴이나 머리화장을 하지 않아도 걸음거리부터 활기에 넘치는 건강한 대통
령. 우리 시민과 같이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는 장관들. 운전기사
없이 자기가 운전하고 다니는 기관장(機關長)들. 그리고 모든 것이 월급(月
給)에 들어가 있어 업무추진비, 판공비, 보직수당비, 교통비, 회식비, 접대
비란 명목이 아예 없는 예산서. 거리의 교통이 막히면 어디에선가 교통경찰
들이 뛰어나와 호루라기를 불고 엉킨 교통을 열어주는 봉사적인 관(官)의
서비스. 다른 자동차나 응급수송차가 혹시나 통과하기 어렵지 않을까 해서
방해 가능성 있는 장소에는 일절 주차를 하지 않는 세련된 시민의식. 큰 소
리로 떠드는 사람이 없는 식당. 그리고 열심히 정직하게 일하고 사는 사람
들에 대한 존경으로 보여주는 높은 사람들의 겸허. 이런 슬기롭고 깨끗하
고 세련된 분위기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신바람나게 우리 강산을 휩쓸
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들끼리라도 이런 새로운 기풍을 만들었으면 좋겠
다. 88올림픽 때와 같이. <이 호 영 (아주대학교 명예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