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도 불과 1주일 여를 남겨두고 있다. 9·11테러 직후에는 한국의 가족과 친지들로부터 여러 통의 안부 전화와 이메일을 받았고, 탄저병 파동 때는 한 제자로부터 “당분간 한국에 들어왔다 가세요”라는 갸륵한 권유까지 받았는데 별탈없이 미국땅에서 한해를 마무리 하게 됐다. 탄저병과 전쟁으로 그동안 어수선하던 분위기는 이제 상당히 차분해진 것 같다. 12월 들어서는 거리 이곳저곳에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등장했고 가족·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사려는 사람들로 상점들은 붐볐다. 상점들은 테러 사건과 불경기의 여파로 인한 부진을 만회하기 위해 막바지 세일에 힘을 쓰고, 테러 희생자 가족을 위해 이미 많은 돈이 기부된 상태인데다가 불경기까지 겹쳤는데도 거리의 자선냄비에 얼마간의 선의를 넣는 모습은 여전한 것 같다. 이번 주 부터는 본격적인 크리스마스 휴가철로 들어가 각지에 떨어져 사는 많은 가족들이 모여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내게 된다. 이곳 사람들도 선물 때문에 고민을 하고 '홀리데이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 모임은 계속되고, 올해는 특히 테러 사건의 여파로 가족과 일상적인 것의 소중함이 더욱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최근 미국에서는 탈레반의 병사로서 싸우다 잡힌 '존 워커'라는 20세의 미국인 청년에 관한 소식이 크게 보도됐다. 특히 매스컴에 의해 그 성장 과정이 크게 보도되면서, 그 가족적 배경이 중요한 논의 재료가 되었고, 이는 보수주의-자유주의의 가치 논쟁으로 확대되었다. 존 워커는 캘리포니아 교외의 부유한 마을에서 변호사인 아버지와 사진작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곳은 민주당 지지자가 많고, 문화적으로도 상당히 자유롭고 관용적인 중산층 마을이며, 그의 부모도 그를 자유롭게 키웠다. 그의 부모들은 그가 스스로의 신앙을 선택할 것을 격려하고, 아들의 정신적인 탐구를 지원했다. 존 워커는 말콤엑스의 전기를 접한 것을 계기로 이슬람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6세 때 한 이슬람 사원에 다니면서 이름과 복장이 아랍식으로 바뀌었으며, 급기야 예멘의 이슬람 학교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 18세 되던 1999년에 잠시 돌아왔던 그는 다시 파키스탄으로 떠난후 올 5월 연락이 끊어졌다가 근 7개월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적 탈레반 병사로 발견된 것이다.
 이런 존 워커의 성장 과정을 자료로, 보수적인 논객들은 자녀에게 과도한 자유를 주어 제멋대로의 인간, 결국은 '반역자'를 만들어낸 가정과 이를 뒷받침 하는 문화적 자유주의의 풍토에 대한 공격을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미국의 '자기혐오'적 흐름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바람직한 가치, 역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지켜낸 가치를 가르치지는 못한 채 또다른 가치를 추구하게 만든 부모의 책임을 지적하는 논자도 있었다. 반면에 아이들에게 열린 마음과 주체적인 사고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며, 극단주의는 권위주의적 토양에서 길러진다면서 자유주의가 '아메리칸 탈레반'을 길러냈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라는 반론도 제기됐다.
 많은 내용을 함축한 이번 사건과 이에 관한 논쟁은 내게도 많은 걸 생각케 했다. 워커의 부모는 아들과 이슬람의 문제를 논의하기도 했고, 아들이 추구하는 이슬람이 극단주의는 아니며 아들이 지적인 일관성을 보이고 있음에 안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를 보면 그의 부모는 아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는 부모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찌보면 주류사회의 가치에 매몰되지 않은 그 부모는, 자신은 사회정의를 위해 살았노라는 도덕적 우월감을 가지면서도 자식에 관해서는 사회적 성취를 이루게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는 애틋한 '부모의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적지않은 부모들에게 뭔가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아닌가?
 어쨌거나 크리스마스 때 미국의 많은 가족들은 모여서 정을 나누며 따뜻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존 워커의 일을 화제로 삼는 가족들도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와 보수주의의 가치 논쟁에 앞서, 자녀를 자유로운 정신의 소유자로 키우고 싶은 부모와 그 자녀들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지 궁금하다. <한영혜 (한신대 교수·미시간대 교환교수)>